[검찰 피의자인권보호 대책]인권 내세워 알권리 원천봉쇄

  • 입력 2005년 4월 26일 0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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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피의자인권보호 대책

‘피의사실 유출 수사담당자 감찰’, ‘취재기준 위반 기자 출입제한’….

검찰이 25일 발표한 이 같은 내용의 ‘인권보호 강화 종합대책’은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구실로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힘 있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힘없는’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발표 배경=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관련해 공표 대상인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는 늘 상충돼 왔다.

대검찰청은 올해 초 검사와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사 과정의 언론보도와 인권보호’란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도 문제지만 피의자의 인권을 구실로 정치인 등 ‘비리 거물’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피의자 인권보호 대책이 나온 것은 청와대의 주문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일부 정치인의 불만 제기도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화그룹으로부터 5000만 원 상당의 불법 채권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부영(李富榮)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격권 등이 침해당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검찰은 “법의 날을 맞아 기존 원칙을 다시 강조하자는 차원”이라고 했다가 기자들이 ‘대통령민정수석실의 지시에 따른 것 아니냐’고 거듭 묻자 “민정수석실에서 원론적인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힘센 사람들을 위한 보호막=언론보도는 언론 스스로의 책임 하에 이뤄지고 있다. 오보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도 지게 된다. 따라서 이와 별도로 검찰이 오보 여부를 판단해 제재를 가하는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최용석(崔容碩) 변호사는 “언론의 오보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나 민·형사상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검찰이 굳이 제재를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조치가 ‘힘 센 사람들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朴根勇) 간사는 “인권 존중이란 이름으로 비리 정치인이나 경제인에 대한 수사 상황을 전혀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권력과 검찰 수사에 대한 언론의 감시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모든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형법학자는 한 명도 없다. 피의사실 자체가 ‘정당한 국민적 관심사’일 경우에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해 이 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에 관해서는 피의사실 공표죄의 성립 여지가 일반인의 경우에 비해 아주 좁다고 대부분의 형법학자들은 보고 있다.

박선영(朴宣映) 가톨릭대 법대 교수는 “피의사실 공표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美·日선 어떻게… 국민적 관심사엔 충실한 브리핑

외국의 수사기관은 언론의 범죄수사 보도를 어느 선까지 허용하고 있을까.

미국 법무부와 일본 법무성은 체포 및 구속영장 사본의 열람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자가 검사를 직접 만나 취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얼핏 보면 피의사실에 대한 취재와 보도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미국과 일본 수사기관은 정당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서는 브리핑을 통해 비교적 정확하고 실속 있는 정보를 전해 준다.

미국에서는 특히 공적 인물(Public Figure)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인정한다.

미국 연방법원은 ‘공적 관심사에 관한(about public concerns)’ 것으로서 ‘합법적으로 입수한(lawfully obtained)’ ‘진실한 정보(truthful information)’는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는 판례를 확립해 왔다.

수사기관이 언론보도의 오보 여부를 판단해 제재를 가한다는 발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일본 법무성은 매일 오후 5시경 공식 브리핑을 하고 이후 배경설명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있다. 체포·압수수색의 실시 여부와 범죄사실 요지에 대한 보도 자료도 내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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