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손 벌리는 학교 못참겠다

  • 입력 2005년 4월 9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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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 A고교 1학년 반장의 학부모 K(45·여) 씨. 그는 지난달 초 학부모회로부터 찬조금 100만 원을 거두라는 압력을 받았다. 아들이 반장이니까 돈을 거둬 내라는 것이었다. 결국 K 씨는 다른 학부모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학부모회 임원을 그만뒀고, 아들도 친구에게 반장 자리를 내줬다. 광주 B초등학교 학부모 K(36·여) 씨는 “같은 반 학부모로부터 ‘학교 행사에 필요하니 5만 원씩을 내달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고민하다 아이가 ‘왕따’ 당할 것 같아 마지못해 돈을 냈다”고 말했다.》

4월은 학부모들에게 ‘잔인한 달’이다. 새 학기를 맞아 학교로부터 학교발전기금을 빙자해 각종 찬조금을 노골적으로 요구받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는 10여 개 학교의 학부모에게서 제보 받은 찬조금 관련 자료를 경찰에 넘겨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대구지부도 다음 주 사법당국에 일선 학교의 찬조금 모금과 관련해 고소장을 내기로 했다.

▽교묘한 징수 수법=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에 따르면 대구 C여고 교장은 최근 학부모회 모임에 참석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찬조금 장부 등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요구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년별 학부모회 회장 또는 총무의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한 뒤 이를 관리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순 대부분의 초중고교는 ‘학부모 총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교장 등 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 앞에서 학교가 처한 현실을 구구절절 털어 놓는다.

‘진공청소기가 부족해 아이들이 비질을 한다’, ‘급식시설이 낡아 교체해야 한다’,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많은데 지원해야 한다’ 등등….

그러면 곧바로 ‘학부모회’ ‘체육진흥회’ ‘지역사회어머니회’가 학급별로 구성된다.

모임별로 회장, 부회장, 총무, 간사를 포함해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10명의 회원이 구성되고 회비 갹출 문제가 거론된다.

심지어 지난해 인천 남구 D여중 학부모회는 일일찻집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며칠 뒤 이 학교 교감은 학부모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돈을 학교에 내라”고 요구했다. 성화에 못 이겨 돈을 건넨 회원들은 “남은 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노현경(43·여)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은 “3월 2일 국회에 상정된 학교발전기금법 폐지안 처리가 유보된 뒤 일선 학교에서 불법 찬조금 모금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투명하지 않은 사용처…커지는 폐해=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교발전기금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통해 걷어야 한다. 또 운영계획을 세워 사용목적과 예산액을 명시하고 사용처에 대한 증빙자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회는 갹출한 돈을 학교 행정실에 전달하곤 알아서 쓰라고 한다. 돈 사용처를 학교장이 운영위 위원장에게 분기마다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갹출한 돈의 일부는 교사 회식비, 학부모·교사 모임 비용, 교사 간식비와 목욕비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

인하대 김흥규(金興圭·65·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회에서 음성적으로 돈을 거둘 게 아니라 교육청 차원에서 교육주간 등을 정해 학부모들로부터 공개적으로 학교발전기금을 모금해 공교육 발전에 쓰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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