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장삿속 가득 “무늬만 선비촌”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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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촌’을 만들었다고 해 큰 기대를 걸었는데 실망스럽네요.”

휴일인 20일 오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선비촌. 대구에서 초등학생인 자녀를 데리고 선비촌을 찾은 한모(37·여) 씨 가족은 10여분 정도 둘러본 뒤 빠져 나왔다.

그는 “인근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지막 코스로 선비촌에서 ‘유학의 멋’을 느끼고 싶었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며 “전문 가이드가 없는 데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고 말했다.

영주시와 경북도가 유교문화권 개발의 핵심사업으로 약 170억 원을 들여 지난해 9월 완공한 선비촌이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개선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비촌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선비정신 등을 느끼게 하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없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식 가게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구미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영주시청 홈페이지에 ‘선비정신을 일깨워 주는 곳’으로 홍보를 하고 있어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왔는데 선비정신은 없고 상술만 있는 것 같았다”며 아쉬워했다.

대구에서 현장학습을 온 초등학생 200여 명도 선비촌 안의 각종 시설을 관찰하고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음식을 사먹는데 바쁜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선비촌의 특색에 맞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몰려다니거나 전통한옥 안을 마구 들락거렸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교사 김모(35) 씨는 “소수박물관은 전문가가 자세한 설명을 해줘 유익했는데 선비촌은 이 같은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 같다”며 “들어오자마자 음식점이 진을 치고 있어 선비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비촌은 영주시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길원개발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길원개발 박무경(朴武慶·39) 기획팀장은 “선비촌의 식당과 상가 12곳은 당초 외부에 설치하려고 했으나 설계변경에 따라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며 “4월부터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주말예절학교를 개설하는 등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선비촌을 비롯해 인근 소수서원, 소수박물관에는 지난해 9월 이후 현재까지 약 35만 명이 찾았으며 요즘은 하루 평균 20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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