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기관사 ‘불안한 3월’… 서울2호선 동승 르포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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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개강 후 첫 주말인 4일 오후 11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 행 막차를 기관사 서정헌 씨가 운전하고 있다. 장강명기자
신학기 개강 후 첫 주말인 4일 오후 11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 행 막차를 기관사 서정헌 씨가 운전하고 있다. 장강명기자
3월은 지하철 기관사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달이다. 평소의 피곤함에 춘곤증이 더해지는 데다 대학 신학기 시작과 날씨가 풀리는 등의 이유로 취객이 많기 때문이다.

4일 오후 승객들이 가장 많다는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행 막차(오후 10시 23분 성수역 출발, 오전 1시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하는 열차)의 기관실에 동승했다.

기관사는 경력 11년째인 서울지하철공사 서정헌(徐廷憲·39) 주임.

“오늘 가관인 승객을 많이 보실 겁니다.”

당장 시발역인 성수역에서부터 열차는 제때에 출발하지 못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취객 한 명이 출발하려는 열차 바깥쪽에 자꾸 기대려 했기 때문. 서 주임이 내리더니 취객을 플랫폼 안쪽 벤치에 앉히고 나서 다시 기관실로 돌아왔다.

기관실은 폭 2m, 길이 70cm 정도의 작은 공간. 터널 안에 설치된 형광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실내가 밝아지고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오후 11시 전후, 삼성역∼서초역과 홍대입구∼동대문운동장에 이르는 구간은 승강장이 꽉 차 선로로 떠밀려 떨어지는 사람은 없는지 조마조마했다. “지하철 운행시간이 연장된 만큼 사람들이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 같다”고 서 주임은 말했다.

종착역인 을지로입구역에서는 술에 취한 20대 여성이 안전선을 밟고 서서 건너편 승강장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기적을 서너 차례나 울렸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다가 열차가 10여 m 앞으로 다가섰을 때에야 비로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심한 경우에는 술에 취해 아예 승강장 끝에 걸터앉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기관사로선 속수무책이란다.

종착역인데도 내리지 않으려는 취객을 실랑이 끝에 내리게 한 뒤 육안으로 차량을 점검하고 서 주임과 함께 역사를 빠져나오니 5일 오전 1시 반. 기관사 숙소가 있는 군자차량기지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4시간 정도 자고 오전 6시 15분에 함께 다시 운행에 나섰다. 졸음을 쫓으라고 공사에서 나눠주는 껌을 씹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졸음은 그래도 제가 조절할 수 있는데 취객이 큰일입니다. 요즘은 제복 입은 사람한테 무조건 반감을 드러내고 하대하는 분들이 많아 정말 힘이 듭니다.”

이날 오전 9시 8분 근무를 마치고 열차에서 내리던 서 주임이 잠긴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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