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년이 행복하다]<1>고령화 사회 뛰어넘기

  • 입력 2005년 1월 10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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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는 ‘고령화’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시급히 대처해야 할 난제로 꼽힌다.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에 직면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복지중심 지원대책의 한계를 절감하고 최근 ‘일하는 노인’을 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본보는 한국의 대책을 모색해 보기 위해 지난해 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미국 영국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 등 선진 5개국의 현장을 둘러보았으며, 이를 6회에 걸쳐 소개한다.》

‘연령차별, 그건 너무 구식 아닌가요(Ageism, That's so Yesterday!).’

영국 노동부의 ‘연령차별 없애기(Age Positive)’ 캠페인 사무실. 한 백인 남성의 이마에 ‘유통기한: 1998년 11월 18일’이라고 찍힌 큼지막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캠페인 담당자 크리스틴 애시돈 씨는 “일할 능력이 충분해도 나이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라며 “누구나 연령차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연령차별 없애기’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배지. “연령차별은 시대착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현재 영국 등 유럽 각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직장과 사회에 만연한 조기퇴직 문화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50, 60대를 일터에 붙들어 두는 일.

특히 2006년 모든 유럽 국가의 연령차별금지법 도입을 앞두고 각국은 나이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인식 전환에 힘쓰고 있다.

또 ‘행복한 일터 만들기’ 등의 캠페인을 통해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7년의 성과=1990년대 후반 고령 노동력 활용이 고령화의 유일한 대안임을 깨달은 영국은 ‘늙으면 일터를 떠나야 한다’는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집중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우선 ‘구인광고에 연령을 표시하지 않는다’, ‘승진시 연령 대신 능력을 중시한다’는 등 6개의 ‘연령 다양성을 위한 실행지침’을 마련해 각 기업에 보급했다.

이후 이를 잘 지킨 기업을 ‘연령 챔피언(Age Champion)’으로 선정해 표창하고 성공 사례를 널리 알렸다. 또 언론 홍보, 각종 이벤트 등을 통해 연령차별의 폐해를 알리는 데 힘썼다.

이를테면 생일카드에 ‘당신은 지난날보다 늙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다가올 날들보다는 젊어요’라고 쓴다는 것. 또 ‘어리다는 이유로(Too young for the job),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Too old for the job) 제외하고 나면 무지한 사람(Too ignorant for the job)만 남는다’고 홍보하는 것 등이다.

영국은 이 캠페인을 통해 고령 노동자를 기피하던 기업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100여 개의 기업이 연령차별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애시돈 씨는 “1997년 처음 시작할 당시엔 사회나 기업이 ‘나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여러 기업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점차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늘어났다”며 “지금은 ‘늙어도 일할 수 있다’고 개인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영국의 ‘연령차별 없애기’ 캠페인 중 “입사할 때 나이를 묻지 말자”는 홍보 포스터. 연령(Age)란에 나이를 표시하는 숫자 대신 ‘왜?(Why)’라는 질문을 적어 연령이 취업의 제한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핀란드, 행복한 일터 만들기=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해 일찍부터 고령화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핀란드는 좀 더 폭넓은 접근을 시도해 왔다.

1980년대부터 국립직업건강연구소를 중심으로 늙음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이를 기반으로 고령 노동자에 적합한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것.

또 ‘고령 노동자를 위한 국가 프로그램’ ‘행복한 직장(Well-being at Work)’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사람들이 일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안전사고 비율을 최소화하고 직장에서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나가도록 배려해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바꾸는 것이 주 내용.

담당자인 핀란드 노동부의 페르티 링콜라 씨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골고루 어울려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앞으로는 고령자가 쓰기 편한 기술을 개발해 누구나 연령의 제약 없이 즐겁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라고 말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연공서열중심 문화를 가진 일본 역시 최근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도요타 등은 연령이 올라가면 임금도 따라 올라가는 전통적인 연공서열제적인 임금구조와 승진시스템이 오히려 고령자 고용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을 중시해 이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 회사에서는 나이나 직함과 관계없이 회사 내에서 ‘∼씨’를 쓰자는 ‘산즈케(樣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 세이케 아쓰시(淸家篤) 교수는 “일본의 고령사회 해법은 과거 일본 기업의 주된 흐름이던 연공서열제나 종신고용제를 탈피해 능력성과주의의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퇴직 유도하다 뒤늦게 U턴… 시행착오 겪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선진국들은 ‘일하는 노인’으로 방향을 전환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해관계가 다른 노조와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데다 대부분 고령화 문제가 ‘먼 미래의 일’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

프랑스는 1980년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연금수혜 연령을 대폭 낮췄다가 국가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오래전부터 고령화 정책을 준비해 온 일본마저도 연금의 운용실적 악화와 급증하는 고령자에 대한 지출 증가로 앞으로 20여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퍼부어야 할 판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張芝延) 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불과 수년 전까지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정책을 썼다가 연금 부담만 엄청나게 키웠다”며 “유럽에서 ‘일하는 노인’의 개념이 등장한 것도 5년이 채 안 된다”고 말했다.

각국은 노인부양비율(경제활동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2000년에 전 세계 평균 22.7%에서 2040년 46.0%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부작용의 조짐이 심상치 않자 뒤늦게 조기퇴직 제도를 금지했다. 또 고령자 고용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노년층을 ‘돌봐야 할 부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구성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영국의 ‘연령차별 없애기’ 캠페인 담당자 크리스틴 애시돈 씨는 “비교적 일찍 노인 일자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영국도 인식 전환의 성과를 보기까지는 7년여가 걸렸다”며 “한국도 지금부터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사회부>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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