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센강’ 살리는 안산토박이 ‘鄭李 가족봉사대’

  • 입력 2005년 1월 3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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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 성포동 4단지에 위치한 정명근 씨 집에 모인 ‘정리가족봉사대’. 가운데 앉아 손자를 안은 사람이 정 씨 부부. 2일 오후 부인의 생일을 맞이해 대부분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변영욱 기자
경기 안산시 성포동 4단지에 위치한 정명근 씨 집에 모인 ‘정리가족봉사대’. 가운데 앉아 손자를 안은 사람이 정 씨 부부. 2일 오후 부인의 생일을 맞이해 대부분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변영욱 기자
《경기 안산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에게 안산천은 ‘그들만의 센 강’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깨끗한 실개천이던 안산천이 나날이 오염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들은 안산천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아버지 정명근(鄭命根·73) 씨와 어머니 이종례(李種禮·71) 씨의 성을 따 만들어진 ‘정리(鄭李)가족봉사대’는 정 씨 부부와 8남매(2남 6녀),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등 안산토박이 일가족 30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만 4남매가 살고 있고, 가장 멀리 떨어져 사는 큰아들도 20분이면 족히 올 수 있다. 부부의 8남매와 손자, 손녀는 모두 안산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이들 대가족은 2003년 11월부터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오전에 어김없이 그들의 ‘센 강’에서 만났다. 해가 일찍 뜰 때는 오전 6시, 겨울에는 오전 8시경 만나 3, 4시간씩 개천을 청소한다. 주말 달콤한 잠을 깨우는 처갓집 식구들을 처음엔 야속하게 생각했던 사위들이 이제는 더 열심히 한다.

셋째사위 송연호 씨(44)는 “여자와 아이들은 안산천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남자는 장화 신고 들어가 개천의 쓰레기를 건져 낸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는 것 때문에 귀찮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족끼리 만나 청소하고 함께 밥 먹는 게 즐거워 그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5세 막내손자 기용이부터 정 씨까지 3대가 출동해 청소를 하면 나오는 쓰레기는 100L짜리 봉투 7개가 훌쩍 넘는다. 거기에 폐타이어, 자전거, 온갖 가전제품 등 개천에서 건져내는 잡동사니까지 합치면 작은 동산을 이룰 정도다.

이들은 매달 한 번 가족과 함께하는 안산천 청소 외에 개별적으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버지 정 씨는 7년 전부터 향교학교와 동사무소에서 ‘충효교실’을 열어 학생과 성인들에게 무료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을 가르치고 있고, 둘째딸 순열 씨(47) 가족은 자연보호협회에 가입해 매주 산이나 강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간호사 출신인 셋째딸 순정 씨(43)는 봉사단체 ‘노후가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노인들의 목욕과 상담을 돕고,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사위 송 씨는 장애인 시설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넷째 딸 순미 씨(40)도 안산시청에서 장애인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자주 찾아가 목욕 빨래 청소 등을 돕는다.

30명의 가족이 모두 따스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8남매, 사위, 며느리들은 주저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는 항상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특히 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만큼 성장했으니 기회가 되면 꼭 사회에 환원하라고 하셨죠. 어머니의 인생은 봉사와 헌신 그 자체였어요. 항상 어려운 이웃을 데려다 밥도 먹이고 본인보다는 가족, 그리고 타인이 우선이었죠.”

순미 씨는 이렇게 말하며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8남매 모두 어머니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대단치도 않은 일을 취재하러 왔다며 인터뷰 내내 불편해하던 아버지 정 씨는 “우리 가족에게 봉사는 가족을 연결해주는 끈으로 대단한 것이 아닌 일상의 행복”이라며 “손자, 손녀를 포함한 아이들이 대견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 ‘착한 가족’은 최근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수여하는 ‘한마음상’과 제11회 전국자원봉사대축제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더 좋은일 하는분들 많은데…” 인터뷰 극구 사양▼

지난해 늦가을 어머니 이종례 씨와 딸, 며느리들이 안산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사진 제공 안산시자원봉사센터
‘정리(鄭李)가족봉사대’ 취재는 어렵사리 성사됐다. 겸손한 그들이 취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

1주일 전쯤 아버지 정명근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 씨는 “사양하겠습니다.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 이러쿵저러쿵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습니다”라고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방법을 바꿔 넷째딸 순미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순미 씨의 대답도 명쾌했다.

“아버지가 원하시지 않는 이상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항상 아버지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어요. 더 좋은 일 하는 분들이 아주 많은데 부끄러워요.”

가족 30명이 모두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무작정 안산시에 도착한 뒤 어머니 이 씨를 설득했다.

이 씨에게 “정리가족봉사대 기사를 읽고 많은 가족이 봉사대를 결성할 수도 있고, 누구 든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봉사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기자가 있는 것을 알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는 정 씨를 부인 이 씨가 설득했고, 결국 2일 오전 이 씨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정 씨는 “절대 과장되거나 미화해서 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청렴’이 가훈인 이 집 가족은 최근에 자원봉사대축제 특별상으로 받은 성금 150만 원을 전액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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