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얼굴 감춘 ‘기부 릴레이’…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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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은 정말로 ‘전염성’이 있는 것 같아요.”

‘희망 2005 이웃사랑 캠페인’을 시작한 지 13일째. 이웃돕기 국민성금의 모금과 운용을 총괄하는 법정 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은 요즘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익명으로 또는 연인이나 친구 이름으로 귀한 성금을 내놓고 가는 ‘이름 없는 천사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모금 운동 이틀째인 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모금회 본부에 한 중년 남자가 부인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는 “목돈이 생겼는데 불우한 소년소녀가장에게 써 달라”며 1500만 원을 쾌척한 뒤 돌아섰다. 이름과 주소를 알려달라는 직원들의 부탁에 남자는 “공공도서관 직원이고 나이는 46세”라고만 말한 뒤 떠났다.

이어 6일 역시 40대의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며칠 전 여기 왔던 부부가 내 친군데 남몰래 좋은 일을 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 친구가 ‘같이 좋은 일 한번 하자’고 권하더라”며 1000만 원을 내고 돌아갔다. 그 역시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어 7일, 역시 중년의 한 남자가 “어제 찾아왔던 친구가 영수증을 깜박 잊고 왔다고 해 대신 받으러 왔다”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친구가 좋은 일 하는 걸 보고 나도 좋은 일 좀 해보기로 결심했다”며 2900만 원을 내놓고 돌아섰다.

서울의 한 회사에 다닌다는 김모 씨(30)는 연인(29)의 가명으로 20만 원을 기부하면서 “외부에는 공개하지 말고 영수증을 여자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익명의 기부 릴레이는 전국 곳곳에서 소리 없이 이뤄지고 있다. 구세군 광주영문 최성환(崔成煥) 담임사관은 “1999년부터 매년 12월 23일경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광주 동구 충장로 광주우체국 자선냄비에 100만 원권 수표를 넣고 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2002년부터 또 다른 40대 남자가 2년 연속 100만 원을 기탁하는 등 릴레이 선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 목표액(12월 1일∼내년 1월 31일)은 981억 원. 다행히 13일 현재 벌써 453억 원이 모였다.

이 모금회는 1998년 모금 관련법에 따라 설립된 법정 단체로 언론사 등 기관이나 단체가 모금한 성금도 이곳에 전달된다. 모금회 관계자는 “경기는 어렵지만 기부 문화는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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