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수능不正]‘중계조’ 수능당일 고시원서 무슨일이

  • 입력 2004년 11월 24일 01시 46분


광주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 당시 ‘답안 중계조’(도우미)로 가담한 대학생 7명과 수험생들의 후배 고교생 37명이 묵었던 광주 북구 용봉동의 H고시원.

이곳에서는 16일 저녁부터 수능이 종료된 17일 오후까지 1박2일간 마치 전시의 야전사령부와 같은 긴박한 상황들이 연출됐었다고 당시 중계조로 가담했던 학생들이 23일 전했다.

141명의 수능 부정 가담자들은 16일 오후 인근 놀이터에 모여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이어 상당수가 4, 5명씩 조를 짜서 마치 유격대처럼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고시원으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고시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2개 고시원의 4, 5평 되는 4개 방에 10명 정도씩 나뉘어 투숙한 이들은 다리도 제대로 뻗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도 밤새 계속해서 실전을 대비한 연습을 했다.

그러나 17일 오전 수능이 시작되자 예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닥쳐왔다.

수십 개의 수신음과 송신음이 뒤섞이면서 답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했고, 다시 답을 보내는 과정에서도 정답을 보내는 문자 전송이 자꾸 실패하면서 혼란이 야기됐다.

당시 중계조로 일했던 광주 A고 K군(17)은 23일 기자와 만나 “예상과 달리 계속 혼선이 생기자 ‘그만두겠다’며 고시원을 뛰쳐나가려는 학생들도 있었다”며 “중계 관리를 맡은 대학생 형들이 윽박질러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답을 모아서 분석한 뒤 다시 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던 것. 그나마 관리를 맡은 대학생 7명이 진두지휘를 해 더 이상의 혼란을 차단하고 답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중계조 학생들은 전했다.

J고 C군(17)은 “답이 엇비슷하게 전달돼 온 경우엔 무엇으로 답을 보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곤 했다”면서 “서로 시끄럽다가도 혹시나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다들 신경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지는 등 마치 지옥에서 보낸 24시간 같았다”고 말했다.

광주=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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