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 나선 68세 노인

  • 입력 2004년 7월 7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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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땅끝마을 해남에서 강원 고성까지 1000㎞에 이르는 국토 순례에 나서 화제다.

한영수씨(68·경기 고양시)는 5월26일 해남을 출발해 목포, 무안, 천안, 임진각, 철원, 화천, 양구를 거쳐 7일 현재 강원 원통 지역을 걷고 있다.

목표지점인 고성 통일전망대에는 10일 도착할 예정으로 그가 걸어온 길은 1000㎞에 이른다.

간단한 취사도구와 여분의 옷 한 벌만 들고 길을 나선 그는 농촌지역에서는 주민들에게 부탁해 마을회관 등에서 잠을 잤고 도심에서는 허름한 숙박시설을 찾아 40여일째 강행군을 하고 있다.

그가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행에 나선 것은 크게 3가지 이유다.

한씨는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잘못을 사죄하는 뜻에서 시작했다"며 "공직생활과 개인사업을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유는 남들처럼 자식들을 제대로 뒷바라지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씻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고양시 이광기 공보담당관은 "20여년전 고양시 벽제읍장을 지낸 한씨는 지금도 후배 공무원들에게 청렴과 강직함으로 기억되는 선배"라며 "4남매를 잘 키운 다복한 가정이라 퇴직 후에도 주변에서는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개인사업까지 정리한 한씨는 매일 새벽 3시 반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집 뒤 야산을 두 시간 이상 오르내리며 체력을 꾸준히 관리해왔다.

하루 20㎞이상 걷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길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격려의 말도 큰 힘이 됐다.

"나를 본 젊은 사람들이 '노인이 그런 취지로 힘든 일을 자청하시니 존경스럽다'는 말을 해줘 쑥스럽기도 했지만 지친 몸에 활력을 넣어주었죠"

한씨는 뜻밖에도 한 노인의 생각과 실천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듯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씨는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아내를 데려와놓고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시켜 늘 미안했다"며 "국토순례를 계기로 여생을 아내와, 자식,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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