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일꾼은 아빠들”… 환경미화-행사도우미 솔선수범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24분


‘서울신곡아버지회’ 회원들이 13일 신곡초등학교 꽃밭을 가꾸고 있다. 이들은 스승의 날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달아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미옥기자
‘서울신곡아버지회’ 회원들이 13일 신곡초등학교 꽃밭을 가꾸고 있다. 이들은 스승의 날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달아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미옥기자
“14일 ‘아카시아 축제’에 사용할 야외 천막을 치려면 오전 6시반까지 학교에 와야 하는 거 맞죠?”

“교문 옆 화단에 자갈을 깔아서 지압을 할 수 있도록 꾸미는 건 어때요?”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4동 신곡초등학교. ‘서울신곡아버지회’ 소속 아버지 10여명이 자질구레한 일부터 큰 행사에 이르기까지 학교 일을 논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아버지로 이뤄진 이 모임은 학교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자칭 ‘마당쇠’다. 학교 곳곳에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컴퓨터실에 마루를 깔거나 뒤뜰에 놓을 책상과 걸상에 페인트를 칠하고 화단을 새롭게 가꾸는 등 이 아버지회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운동회나 현장체험 행사 등에 필요한 시설을 마련하고 진행을 돕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아버지회는 매년 가을 김치를 담가 홀로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에게 전해 준다.

2000년 신학기 초 우연한 기회에 학교를 찾은 아버지들은 이경태(李敬泰·62) 교장이 화단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버지회 회장 함평국씨(42)는 “혼자 잡초를 뽑고 돌멩이를 골라내는 농부 같은 분이 교장 선생님이란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다”며 “우리도 학교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씨의 취지에 동감한 아버지들이 속속 모여들어 2000년 6월 아버지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모임을 꾸려 가기란 쉽지 않았다. ‘곧 그만둘 것’ ‘시간 많고 걱정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주위의 냉소적인 반응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회원끼리의 의견 차이였다.

재정적으로 학교를 지원하자는 의견과 순수한 노력봉사로 학교를 가꾸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의견 대립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재정 지원’을 주장하는 회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50여명이던 회원이 절반으로 줄어 2년 만에 해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마련하자는 마음을 서로 확인해 가면서 회원들의 결속은 더욱 굳어졌다. 이 교장의 끊임없는 지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됐다.

현재 아버지회 회원은 64명으로 자영업자와 회사원이 반반씩이다. 이들은 주로 일요일에 모여 자녀들과 함께 운동한 뒤 오후에는 학교를 가꾼다. 매달 1만원씩 회비를 내고 한차례 회의를 열어 학교 일을 논의한다.

요즘 아버지회는 학교 앞 통학로를 안전하게 꾸미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이들이 차와 뒤섞여 등하교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도로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어서 애를 태우고 있다.

회원 권혁진씨(42)는 “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면서 “자주 만나는 선생님들과 신뢰가 쌓여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일각에서 오가는 ‘촌지’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자녀가 졸업한 뒤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이석호씨(45)는 “아버지회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즐겁고 삶이 풍요로워졌다”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회 회원들은 스승의 날인 15일 학교를 가꾼 투박한 손으로 선생님들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달아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학교 최명숙 교사(34·여)는 “학교를 위해 땀흘리며 무언가 도움을 주려는 아버지들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