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어르신 말벗’ 대구 미도다방 정인숙씨

  • 입력 2004년 4월 23일 18시 07분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대했을 뿐인데, 과분한 칭찬을 받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할아버지들의 ‘연인(戀人)’, 정인숙 대구 미도다방 주인(53·여·사진)이 21일 지역 사회단체인 보화원에서 주는 선행상을 받았다.

대구 중구 종로2가에서 20년째 미도다방을 ‘사랑방’ 형태로 꾸려 가고 있는 그는 대부분 70, 80대인 할아버지 손님들을 정답게 맞이해 말벗이 돼 주고 있다.

손님들도 그런 그를 ‘정 여사’로 부르며 깍듯하게 대한다.

“할아버지들이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며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꼭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동심에 젖곤 한답니다. 요즘은 경기침체 때문인지 자식들이 하는 사업 걱정을 하는 분이 많고 시국을 우려하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미도다방은 하루 평균 400여명이 찾는다. 이 중 200명은 매일 출근하는 단골들. 100세를 넘긴 단골 노신사도 있다.

그는 “자주 다방을 찾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싶으면 가족들한테서 어김없이 슬픈 소식이 날아온다”며 “부고를 친구분들에게 전화로 전달하는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단골 노인들이 세상을 뜨면 직접 문상을 하는 ‘의리’를 10여년째 지켜 오고 있다.

또 해마다 5월 8일 어버이날과 12월 동짓날에는 정성들여 마련한 돼지고기와 떡, 팥죽 등을 할아버지들에게 대접한다.

할아버지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수년째 커피 한 잔 값으로 1500원만 받는다.

그는 또 ‘미도(美道)봉사회’라는 봉사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해 소년소녀 가장에게 학비도 보태 주고 있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도 퇴임 후 미도다방을 3번이나 들러 이곳을 자주 찾는 대구공고 동문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도다방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서울과 부산에서도 할아버지 손님들이 찾는 등 명소가 되고 있다.

정씨는 “돈을 모아 할아버지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멋진 쉼터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이번에 받은 선행상의 상금(70만원)으로 다가오는 어버이날 푸짐한 잔칫상을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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