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전용일씨 52년만에 가족상봉 '눈물바다'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6시 43분


국군포로탈북자 전용일씨(왼쪽에서 두번째)가 26일 서울 국방회관에서 큰누나인 전영목(79)씨,막내 여동생 전분이씨(58)(맨왼쪽) 남동생 전수일씨(65)(맨 오른쪽)등 가족과 상봉하고있다.[연합]
국군포로탈북자 전용일씨(왼쪽에서 두번째)가 26일 서울 국방회관에서 큰누나인 전영목(79)씨,막내 여동생 전분이씨(58)(맨왼쪽) 남동생 전수일씨(65)(맨 오른쪽)등 가족과 상봉하고있다.[연합]
"수일아! 형님! 끝분아! 오빠!"

26일 오후 2시30분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 1층 연회실.

북한을 탈출해 24일 귀환한 국군포로 전용일(72)씨와 전씨의 가족은 처음 대면하는 순간 잠시 침묵하다 이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이름만 불렀다.

지난 1951년 군에 입대한 전씨는 53년 인민군의 포로가 된 이후 지금까지 가족을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느낀 듯 눈물만 흘리다 막내인 여동생 전분이씨(57·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끝분아!"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아명이 `끝분'인 분이씨는 "네가 끝분이야. 끝분아!. 오빠를 용서해라. 오빠 구실 못했다"는 전씨의 말에 "오빠 살아 있었구나. 큰 일 해냈다"며 5세 때 생이별한 오빠를 위로했다.

전씨는 이날 상봉한 동생 2명의 이름은 쉽게 기억했으나 군에 입대했던 51년에 시집간 누나 전영목씨(78.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얼굴을 보고도 잘 알아보지 못해 한동안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분이씨는 "오빠. 영목이 누나 모르겠어. 한일(맏형)이 오빠 바로 동생 영목이 누나야. 오빠가 군대갈 때 화양으로 시집간 누나야"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누나를 기억해낸 듯 "맞아, 날 장가보내 준다고 그랬지. 누나. 누나…"라며 목놓아 울었다.

영목씨는 뒤늦게나마 자신을 알아보고 얼굴을 감싸안은 채 "누나. 이 동생을 용서해라"며 울먹이는 전씨에게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었구나"라는 말만 할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씨 가족들은 "이게 꿈이야, 생시냐"는 말을 연발하며 52년만의 상봉을 믿지 못하다가 전씨를 의자에 앉힌 뒤 큰 절을 올린 데 이어 동석한 분이씨의 남편과 동생 수일씨(65·경북 영천시)의 부인과 아들을 소개했다.

전씨는 분이씨의 남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처남, 반갑습니다"라며 큰절을 하자 손윗 처남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한 게 없어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됐다" "됐다"라며 절받기를 애써 거부했다.

전씨는 이날 가족상봉에서 막내 분이씨에 대한 관심이 유달랐다. "TV에 나온 얼굴보다 좋다. 얼굴이 건강하게 보인다"는 분이씨의 말에 "이제 마음 푹 놓아라. 오빠가 업어주고 안아줄께. 이 오빠는 나약한 놈이 아니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남동생 수일씨가 부인을 소개하자 "내 군대 가기 전에 같이 놀았지"라며 회상했고, 수일씨는 "항상 형님 손잡고 이웃마을에 같이 놀러갔다"며 전씨의 군입대 전 시절을 떠올렸다.

이들 가족은 이날 30여분간 면회하는 동안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잠시 포즈를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시종 눈물의 대화를 나눴다.

전씨의 누나 영목씨와 남동생 수일씨 부부와 아들, 여동생 분이씨 부부 등 6명은 이날 오전 정부 관계자로부터 면회가 가능하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비행기편으로 상경해 눈물의 상봉을 했다.

검정색 모자와 반코트 차림의 전씨는 이날 국방회관에 도착하자마자 타고 온 승용차에서 혼자 내려 혼자 면회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