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실종 13시간여만에 "4명 구조"

입력 2003-12-09 00:03수정 2009-09-2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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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8명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8일부터 9일 새벽까지 남극기지 현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긴박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9일 새벽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 남극기지 소속 수색대가 8일 중국기지 인근 아들리섬에서 한국 대원 4명이 생존하고 한 명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 세종기지에 보고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의 실종자는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가족 및 세종기지의 수색대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사고’는 세종기지가 설립된 1988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긴박한 구조작업=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연구원(KORDI)에 따르면 6일 오후(현지시간) 고무보트 ‘세종1호’와 ‘세종2호’를 타고 16차 월동대(越冬隊) 대원 24명을 인근 칠레 프레이 공군기지에 수송한 뒤 세종기지로 돌아오던 17차 대원 중 ‘세종2호’에 탔던 대원 3명이 실종됐다. 또 7일 ‘세종1호’를 타고 이들을 찾아 나선 5명도 연락이 끊겼다.

세종기지는 당초 실종된 연구원들이 콜린스만 안쪽이나 넬슨섬에 위치한 체코 거점 기지에 상륙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기지측은 사고 직후 대책반을 구성해 러시아와 칠레, 중국, 체코 등 주변에 있는 외국 기지와 공동으로 육상 및 해상 수색작업을 벌였다.

그러던 중 8일 오전 10시20분경 러시아 구조대로부터 통신 연락을 받았다. 중국 기지와 칠레 기지 사이 아들리섬 비상대피소에서 7일 실종자 5명 중 4명을 구조했다는 것.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던 세종기지는 일순간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잠시 후 연구원 전재규씨(27)가 사망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자 세종기지 대원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세종기지측은 내심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한 7일 실종자 5명 가운데 4명이나 구조된 것으로 확인되자 6일 실종자 3명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지와 합동으로 육상 및 해상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종1·2호 연쇄 실종=세종1·2호 가운데 먼저 실종된 것은 세종2호. 이 고무보트에는 강천윤 부대장 및 연구반장(39)과 김정한 연구원(27), 최남열 기계설비 담당 대원(37)이 탔다.

이들은 6일 오후 5시반경 “심한 파도와 눈보라 때문에 인근 중국 기지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

조난 소식을 전해들은 세종기지는 인근 기지와 공동으로 계속 무선연락을 취했으나 교신에 실패했다.

우루과이와 칠레 해군도 함정을 급파해 수색작업에 나섰으나 세종2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기상은 평균 풍속이 초속 13m, 최대 풍속은 초속 20m 등이었으며 시계(視界)가 불량해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다음날인 7일 오전 8시반경 세종2호의 강천윤 부대장이 “모두 안전하다”는 무선을 보내왔으나 연락이 다시 끊겼다. 이는 아르헨티나 소속 남극 순찰선인 ‘카스티요’호가 수색작업에 동참한 지 1시간반 뒤의 일이다.

세종기지는 이후에도 수차례 무전기 발신음이 들리는 등 교신신호를 감지했으나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이어 오후 7시경 전재규(27) 정웅식 연구원(29)과 진준 기관정비 담당 대원(29), 김홍귀 중장비 담당 대원(31), 황규현 의무 담당 대원(25) 등 5명이 수색대를 구성해 세종1호를 타고 세종2호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보트 운전을 맡았던 김홍귀 대원이 오후 8시50분경 “보트에 이상이 생겼다. 물에 빠졌다…”는 마지막 교신을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이에 앞서 강천윤 부대장 등 6명의 제17차 월동대원은 6일 오후 1시10분 세종1·2호를 이용해 제16차 대원 24명을 인근 칠레 프레이 공군기지에 이송했다. 출발 당시 풍속은 약 초속 10m였다. 이 가운데 세종1호는 이날 오후 5시25분 수송을 마치고 세종기지로 무사히 귀환했으나 세종2호는 실종됐다.

17차 대원은 지난달 26일 세종기지에 도착했으며 16차 대원은 1년 전 파견돼 연구활동 등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이번 사고 왜 일어났나=직접적인 원인은 남극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해양성 기후 지역인 남극은 수시로 바뀌는 날씨로 인해 기상변화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조난사고가 일어난 6, 7일에도 최대 풍속이 초속 18∼20m에 이를 정도로 강풍이 몰아친 데다 세찬 눈보라까지 겹쳐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해양부는 특히 남극 해안지방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강한 눈보라인 ‘블리자드(blizzard)’가 연구원들이 탄 보트를 덮쳐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블리자드가 발생하면 눈앞 몇 m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져 무리하게 이동하면 한 곳을 중심으로 빙빙 도는 이른바 ‘환상방황(環狀彷徨)’ 현상을 겪으면서 그 위치를 잃어버려 조난을 당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구진들이 보유한 열악한 장비가 화근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악천후가 빈번한 남극에서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얼음을 깨고 항해할 수 있는 쇄빙선(碎氷船)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해 조난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곳곳에 산재한 빙하와 강풍, 세찬 파도로 대변되는 남극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양부측은 “쇄빙선을 한 번 임대해 10일 정도 이용하면 대략 10억원 정도가 들어간다”며 “한국해양연구원측이 예산 문제 때문에 쇄빙선 대신 고무보트를 이용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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