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단돈 2원" 인권단체 손배·가압류 실태 보고서 발표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5시 04분


최근 노동계의 최대 쟁점인 노조 및 노조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금액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등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30개 단체가 지난 12일 발표한 '2003년 노동기본권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31일까지 취합된 손배·가압류 규모는 총 50개 사업장, 1495억6000만원으로 이 중 손배 청구액은 651억5000만원이며, 가압류 금액은 844억1000만원이다.

인권단체들은 보고서에서 "손배·가압류 행사는 노동 3권, 인간답게 살 권리 등 제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특히 사용자측에서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남용해 노동자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사팀은 "J증권의 경우 노조위원장의 부친·숙부·조모의 집과 선산까지도 손배·가압류 대상으로 하는 등 '신판 연좌제' 성격을 띠고 있으며, H그룹은 노조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액 290억원과 별도로 노조원 개인에게 최대 190억원의 손배·가압류를 청구하는 등 개인이 평생을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 D발전의 경우 사측이 파업기간 동안 7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노조와 간부를 상대로 32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가 '파업기간 손해보다 이익이 더 많다'는 취지로 회사측의 청구를 기각하기도 한 사례를 들며 "손배·가압류 금액이 실제 손실액보다 크게 부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에는 '이제 이틀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라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지난 1월 분신)의 유서내용과 손배·가압류로 인해 경제적·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실려있다.

H중공업의 한 조합원은 "지난 8월 월급명세서에 실수령액이 2원으로 찍혀있었다"며 "조합원들 대부분이 500만원에서 1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의 한 조합원도 "현재 노조간부 5명의 생계가 막막한 상태"라며 "세금 및 공제 등을 제외하고 나면 500원에서 20만원정도밖에 남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의 10%에 불과한 공공부문 사업장의 손배·가압류 규모는 394억7000만원으로 전체 사업장의 26.4%를 차지하고 있어, 공기업이 오히려 손배·가압류 조치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단체들은 "최근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과 자결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무시한 '경제 우선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비극이자, 삶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처절한 인권선언"이라며 "노동조합의 파괴수단이자 노동운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손배·가압류에 대한 금지 법규를 제정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이 우선적으로 손배·가압류를 취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권·노동단체의 주장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손배·가압류가 남용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올 해 만도 수많은 불법파업이 있었지만 기업들이 최대한 자제, 손배와 가압류 신청은 모두 6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모든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신청하는 것도 아니고 불법파업 중 일부에 대해서만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계가 불법파업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련법안의 개정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급여의 50% 이상은 압류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모든 것을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처리해 오고 있다"면서 "불법행위에 대해 초법적인 특례를 주자는 법개정은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민변 3개 단체는 올초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 남용을 방지하는 법률개정안을 만들었으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원심사소위에 방치된 상태이며,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 주도해서 발의된 개정안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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