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윤리강령 ‘朝令暮改’

  • 입력 2003년 8월 6일 0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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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승(梁吉承)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향응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가 공직자윤리강령을 시행 두 달 보름 만에 개정키로 한 것은 현행 규정의 비현실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시행 당시부터 졸속이란 비판을 샀던 점에 비추어 ‘조령모개(朝令暮改)’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비서실은 5월 19일 비서실 직원의 경우 직무와 관련한 식사 접대 범위를 1인당 2만원으로 규정하고 이해관계가 밀접한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인사보좌관실의 경우는 모든 국민을 ‘이해관련자’로 규정해 식사 접대를 일절 받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여기에다 윤리규정의 시행과정이 문제였다. 당시 총무비서관실의 한 행정관이 ‘청와대는 타 부처보다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반 부처의 접대금액 상한선(주로 3만원)보다 1만원이나 낮추어 결재를 올린 것을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채 결재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청와대 안팎에서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쇼하자는 거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실제 일부 참모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윤리강령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고건(高建) 총리가 ‘청와대가 당연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소수 의견으로 묻혀버렸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한때 접대 금액을 7만원이나 10만원으로 대폭 올려 현실화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으나 ‘깨끗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큰 점을 감안할 때 결국 다른 부처의 기준에 맞추는 선에서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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