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벌리는 교육청…학부모 속앓이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9시 37분


대구시교육청이 시민프로축구단 시민주(市民株) 공모를 위해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사실상의 강제모금을 벌이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이는 최근 물의를 빚은 서울시교육청의 북한학교지원 성금모금과 함께 교육당국의 무분별한 ‘강제모금’의 한 예로 교육불신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에 창단 예정인 ‘대구시민프로축구단’측은 시민주를 공모하면서 시교육청과 함께 각급 학교에 주식청약을 사실상 할당하고 있다. 최소 청약주는 학생 5만원(10주), 일반인(학부모) 10만원이며 교사들에게 학급별로 수십만원씩 할당하는 학교도 있다.

교육청의 협조지시를 받은 각급 학교는 학교장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줄 귀한 선물을 해달라”는 취지의 가정통신문을 학생 편으로 보내 사실상 시민주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

학부모 정모씨(34·대구 동구)는 “주식이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를 통해 갑자기 시민공모주 협조문을 보내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주식을 살 수 없다고 하니까 밥도 먹지 않고 토라지는 아이를 보니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씨(43·대구 달서구)는 “무시하자니 찜찜해 10만원을 냈지만 돈을 빼앗긴 기분”이라며 걸핏하면 학부모들에게 손을 벌리는 교육현실을 개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할당액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이 학생에게 애원하는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대구의 한 여고생(17·고교2년)은 “이런 일로 담임선생님이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며 “제발 교사와 학생을 어렵게 하는 일은 그만하라”고 호소했다.

대구의 한 남자 고교교사(39)는 “교사들이 시와 교육청의 영업사원이냐”며 “축구단 출범 이후 표가 안 팔리면 또 학교에 할당할까봐 벌써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최근 북한학교에 TV를 선물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이달 말까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해달라고 요청,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거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학부모는 “교육청에 항의전화를 했더니 ‘참가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학교에 한마디하면 돈이 척척 모아진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한심하다”고 말했다.

한편 6월 한일월드컵 때에도 입장권이 팔리지 않자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생들에게 표를 강매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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