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막아라" 호텔들 비상

  • 입력 2002년 12월 4일 18시 49분


국회앞 시위-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회원이 도청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철민기자
국회앞 시위-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회원이 도청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철민기자
도청 공포에서 호텔은 얼마나 안전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청에서 100% 자유로운 호텔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 내 도청방지 시스템이 구축된 곳은 1군데도 없을 뿐 아니라 도청방지 매뉴얼이 있는 곳도 없었다. 호텔마다 폭탄이나 테러에 대비한 매뉴얼이 꼼꼼하게 마련된 것과 대조적이다.

통상적으로 호텔 투숙객은 자체적으로 도청 문제를 해결했다. 외국 VIP나 정부 고위 관료가 묵을 때는 미리 자체 조사팀을 파견해 안전점검을 한 것. 그 때 도청장치가 있는지도 함께 체크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도청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도청 방지에 나서고 있다. 정기점검을 늘리고 직원교육을 강화하는 등 ‘도청이 없는 호텔’ 이미지 심기에 나섰다.

외국 VIP 손님이 즐겨 찾는 신라호텔은 유선전화만큼은 확실히 안전하다고 말한다. 보안업체인 에스원이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호텔 내 전화를 점검한다. 특히 전화선이 모여있는 복도 내 통신장비함은 철저하게 봉인돼 일반인들이 손댈 수 없도록 했다. 통신실도 호텔 직원만 들어갈 수 있고 출입할 때에는 장부 기록을 의무화했다.

웨스틴조선호텔과 롯데호텔, 르네상스호텔 등은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객실을 점검한다. 예전 투숙객이 설치했을지 모르는 도청기구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VIP 손님으로 분류된 고객이 묵을 때는 별도 요청이 없어도 자체 점검을 벌인다.

도청과 관련한 직원교육도 부쩍 늘었다.

프라자호텔은 대선을 앞두고 도청 우려를 없애기 위해 객실 정비원을 대상으로 도청 방지 교육을 강화했다. 객실 정비원은 투숙객이 있을 때도 합법적으로 객실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직원. 따라서 투숙객 물건이 아닌 듯한 낯선 물건이 보이면 반드시 신고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르네상스호텔 등은 지난해 9·11 테러 이후 강화된 테러방지에 관한 교육에 도청 방지 내용을 첨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국내외 기술수준 어디까지▼

올해 7월 완공된 서울 중구 정동의 새 러시아대사관을 지을 때 대사관측은 건축자재를 세밀하게 점검했다. 극소형의 도청장치가 자재 속에 숨겨져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첨단기술의 ‘산물’인 도청기술은 이제 모든 것을 도청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유무선 전화통화는 물론 컴퓨터에 접속된 프린터와 복사기까지 원격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에 대사관을 지을 때 외벽과 내벽 사이에 구리판이나 니켈판을 끼워 넣어 도청 전파가 안팎으로 오가는 것 자체를 봉쇄했다. 본국과 주고받는 중요 전문은 전파를 흡수 또는 반사시키는 재질로 사방을 두른 방에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패’를 뚫는 ‘창’(도청)이 또다시 개발되는 등 소리없는 도청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6월 2002 월드컵대회 때 대테러부대와 경찰청은 테러방지를 위해 레이저빔을 이용한 첨단 도청장비를 도입했다. 레이저빔을 목표 건물의 유리창에 쏴서 건물 내 사람들의 음성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유리창 진동을 감지한 뒤 이를 모아 음성신호로 복원해 증폭시키는 기계였다. 전문가들은 “당시로서는 국내에 도입된 최첨단 기술이지만 미국 등지에서는 이 장비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청장치를 설치한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도청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됐다. 보통 도청장치는 설치된 곳에서 1㎞만 떨어져도 도청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원거리 도청장비는 40㎞ 떨어진 곳에서도 기존의 전화선이나 컴퓨터 통신으로 볼륨과 출력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 도청장비가 노출되지 않도록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파송출을 중단시키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도청의 대상도 음성뿐만 아니라 컴퓨터 화면과 프린터, 팩스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템페스트로 불리는 이 기술은 컴퓨터 모니터나 프린터, 복사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모아 다른 소음을 제거한 뒤 데이터를 송두리째 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등에서는 전파를 지구 밖의 인공위성이나 혜성 같은 유성에까지 쏴서 반사시켜 도청하는 방법도 소개됐다.

보안전문업체인 에스원 특수사업팀 조성룡(趙成龍) 팀장은 “도청은 상대방의 중요한 정보를 훔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역설적이지만 디지털기술 등 최첨단기술이 가장 먼저 악용되는 것도 도청기술이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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