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사망사건]"책임통감…고의적 의도 없었다"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8시 25분


▼美대사-軍사령관 문답▼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와 리언 라포트 주한 미군 사령관은 27일 “우리는 두 어린 소녀의 죽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고를 낸 미군 병사 2명이 한국을 출국한 이날 두 사람은 이날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미대사관 공보과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군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와 한미관계가 손상될 것 같은데….

▽허버드 대사〓많은 한국인들이 이번 판결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 양자 관계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여러분을 만나는 것을 통해 우리 미국이 얼마나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재발방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라포트 사령관〓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훈련절차를 면밀히 검토해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재판결과는 무죄인데 책임은 누가 지나.

▽허버드〓분명한 사실은 미군 병사가 장갑차를 이용한 작전 도중 한국 도로에서 2명의 소녀를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책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고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살인이나 과실치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판과 관련해 왜 중대장만 나와서 증언했나. 지휘 계통상 다른 사람의 책임도 있지 않나.

▽라포트〓미 2사단의 지휘계통을 통해 차량 이동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에 대해 조사중이다.

-최근 주한 미군에 대해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졌는데….

▽라포트〓한국 젊은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폭력적으로 발전될 때는 안전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미군의 총 책임자로서 장병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부대 방어조치를 검토중이다.

-성조지에서 당시 부대원 중 한 사람이 장교의 지휘책임 문제를 거론했는데….

▽라포트〓성조지의 글은 주관적인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객관성은 없다고 본다.

-두 장병이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을까.

▽허버드〓한국의 재판권은 미군이 공무가 아닌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것이다. 유사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나더라도 똑같은 절차가 적용될 것이다. 두 장병은 분명히 공무 수행중이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대책위 "매일 오후6시 규탄집회"▼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된 미군 2명이 무죄평결을 받은 데 이어 이들이 출국한 것으로 알려지자 27일 곳곳에서 규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범국민 행동지침’을 발표하고 매일 오후 6시 전국적으로 규탄집회를 갖기로 했다.

또 사고가 일어난 매주 목요일 정오에 전국 사찰과 교회 성당에서 항의 타종과 예배를 갖는 한편 백악관과 미 국방부를 상대로 사이버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 50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미8군 사령부 앞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두 미군을 한국 법정에서 다시 세울 것과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7시10분경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위원장 김용한)와 시민단체 회원들은 평택시 신장동 K55 미 공군부대 정문 앞에서 “살인 미군 처벌하라”고 외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한편 경기 의정부시 미 2사단이 26일 영내로 진입해 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대학생과 민주노동당원 등 53명의 처벌을 요구하고 나서자 시민단체들이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미 2사단 관계자 3명은 26일 오후 경기 의정부경찰서를 방문해 정병모 서장에게 △연행자의 인적사항 공개 △불법 행위자 처벌 △부대를 촬영한 캠코더 또는 스틸카메라의 테이프 인계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범대위 관계자는 “미군이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무례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처벌을 요구한 것은 내정 간섭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27일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나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 성명에 대해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반신반의의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고 신효순양의 작은아버지 신현기씨(41)는 “5개월이 지나서야 사과의 뜻을 나타냈고 그나마 간접적으로 발표했는데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불만의 뜻을 나타냈다.

또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는 “공식 사과라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잘못된 재판 탓에 두 미군이 본국으로 돌아간 시점에 사과가 발표돼 그 진의에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심미선양의 부친 심수보씨(48)는 “늦게나마 미국 대통령의 사과가 발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일을 기회로 정부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적극 나서 억울한 국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의정부〓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평택〓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무죄평결 미군 출국▼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주한미군 법정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운전병 마크 워커,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 27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경찰과 미8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두 미군 병사는 이날 오후 2시15분경 경기 평택시의 미공군 부대에서 미국 월드사 ND11편 민간항공기를 타고 일본 오키나와를 경유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출국했다.

두 사람은 출국 전 발표한 사죄성명을 통해 “비록 본의 아닌 사고로 인한 비극일지라도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가 난 6월13일 여중생을 친 차량 앞에서 다른 궤도차량을 운전했던 조슈아 레이 상병은 최근 미 군사전문 일간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에 보낸 기고문에서 “상급자들이 안전문제를 외면했으며 책임질 사람은 관제병과 운전병이 아닌 지휘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대 이동로로 넓은 문산 우회도로를 두고 좁은 양주군 지방도로를 이용했고 △모든 운전병들이 2박3일간 5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 점을 사고 원인으로 지적한 뒤 “사고 당일 오전 이런 문제를 제기했으나 지휘관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서 근무중인 그는 “만일 포트루이스 인근 마을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해당 지휘관은 장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원=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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