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시 예산절감 '눈가리고 아웅'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7시 47분


이명박(李明博) 시장 취임 이후 굵직한 현안들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가 강력히 전개하고 있는 예산 절감운동이 ‘생색내기’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일부 부서는 무리하게 예산을 아끼려다 행정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큰 사업까지 축소해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하반기에만 2600억원 절감?〓시는 최근 ‘2002년 예산절감 운용계획’을 마련, 시장에게 보고했다. 신공법 도입 등 새로운 아이디어와 업무 개선으로 2652억원의 예산을 아껴 청계천 복원, 강남북 균형발전 등의 역점사업을 시민들의 추가 부담 없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시장은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 26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며 “이는 사업중단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공정을 바꾸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아낀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절감 부풀리기 일색〓그러나 서울시의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책이나 여건이 바뀌었거나 사업추진이 부진해 내년 이후에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 항목들이 태반이다.

보건복지국은 경로연금 지급과 관련, 319억원의 예산을 아꼈다고 보고했지만 이는 중앙정부의 국비보조가 예년보다 3배 가까이 많이 나와 쓰지 못한 불용액(不用額)이다.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등 6개 도로사업에서 215억원을 아꼈다는 대목도 예산절감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들의 반발로 보상이 늦어져 올해 쓸래야 쓸 수 없는 예산이기 때문.

이밖에 △택지를 확보하지 못해 건설하지 못한 공공임대주택 △사업 추진 주체가 정부로 바뀐 도매시장 포장화사업 △월드컵 기간에 끝난 중국 본류음식 엑스포 규모 조정 등도 버젓이 하반기 예산절감 항목에 잡혀 있다.

▽꼭 써야하는 돈까지 절감〓이 시장의 독려에 따라 각 부서가 경쟁적으로 예산 절감에 나서다보니 돈을 아끼면 행정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큰 사업도 규모가 축소됐다.

교통관리실은 도로표지 정비, 교차로 개선사업, 교통안전 시설물 설치 등 교통사업을 최소화해 30억원을 줄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웠다.

또 시설관리공단은 연 2, 3회 실시하는 터널 세척작업 때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고압 물청소만 실시해 연간 10억원을 줄일 방침. 그러나 공단 관계자는 “화학약품을 쓰지 않으면 아무래도 청소작업의 효과가 떨어져 사고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2700여명을 헤아리는 노숙자들도 된서리를 맞게 됐다. 노숙자 문제를 전담하는 노숙자대책반이 팀으로 격하돼 구성원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노숙자 수용시설인 ‘희망의 집’도 축소 운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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