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춤추는 불법-탈법

  • 입력 2002년 5월 24일 18시 54분


홍보물 점검 - 권주훈기자
홍보물 점검 - 권주훈기자
《6·13 지방선거가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탈법 혼탁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처럼 금품을 대량으로 살포하거나 중앙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사례는 두드러지지 않고 있으나 월드컵 때문에 낮아진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흑색선전과 비방전은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심하다. 특히 인터넷 매체의 발달을 틈탄 사이버상의 저질 비방이 신종 수법으로 대두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사이버 혼탁▼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욕설을 동원한 저질 비방전이 열을 더하고 있다.

출마예상자들이 개설한 공식선거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 지역 언론사 홈페이지에는 특정후보를 비난하는 인신공격성 글로 넘쳐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각각 하루에 300여건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이 중 절반 가까운 글이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관련기사▼
- 불법운동 4년전의 6배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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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올라온 글 중에도 ‘살살이처럼 웃지 마라’ ‘기회주의적이고 무능한 말쟁이’ ‘마누라 덕에 재산이 많다’ ‘밴댕이처럼 생긴 놈’ ‘역겨운 냄새가 난다’ ‘엄마 젖이나 더 먹어라’ ‘또라이 같은 놈’ 등 원색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시군구청의 홈페이지도 현직 단체장 출마자를 비방하는 글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원지역의 한 군청 홈페이지에는 현직 군수를 ‘유부녀와 놀아나 가정을 파괴시킨 파렴치한’이라고 비방하는 글이 수십차례 올랐고, 경기지역의 한 군청 홈페이지에는 ‘군수가 읍내 M다방의 여종업원과 혼외자녀를 출산했다’는 흑색선전이 올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회사원 K씨는 광주의 한 구청 홈페이지에 모 광주시장 출마예정자의 여자문제를 거론했다가 13일 구속되기도 했다.

대전지역의 인터넷 신문인 ‘디트뉴스’에도 특정 후보의 여자관계 재산관계 등을 비난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오르고 있다. 디트뉴스 관계자는 “선거와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이라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은 그때그때 삭제하고 있지만 홈페이지 관리자 한 명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어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한 정치전문사이트 게시판에 오른 글 중에는 제목에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선 모 인사의 이름을 올려놔 관심을 끈 뒤 내용을 읽어보기 위해 클릭하면 포르노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한 것도 있었다.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문자메시지를 휴대전화를 통해 대량으로 유포하는 사례도 있다. 경기 안양시장 후보로 나선 한 출마자는 최근 자신을 비난하는 문자메시지가 대량 유포돼 경찰에 수사를 의뢰, 발신자를 추적했으나 허탕을 쳤다.

그러나 각 정당이나 후보측은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네티즌끼리 공방을 벌이는 것이어서 삭제를 요구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 인력도 없어 상대 후보측과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를 위주로 게시판을 훑어보고 있지만 언제 어느 사이트에서 비방글이 올라오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공무원 줄세우기▼

일상적인 업무를 빙자해 각종 행사에 참석, 지지를 호소하거나 재임 중의 업적을 과대포장한 자치단체 소식지를 대대적으로 배포해 자신을 선전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민지원활동을 이유로 지역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관광을 보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기초단체장은 자치단체 간부직원에게 1000여만원을 주고 홍보자료와 선거캠프 준비를 지시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부하직원들을 시켜 ‘6·13 지방선거 예상 논쟁현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토록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단체장의 선거운동을 위해 관내의 통·이장과 의용소방대 등 관변조직 단체 회원 3900여명의 후보 지지성향을 조사한 직원 2명을 포함해 이 자치단체의 전현직 직원 4명이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인천의 모 구청장도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후보 경선을 앞두고 동장들에게 자신에게 우호적인 성향의 대의원을 파악토록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대구의 한 구청장은 지난달 말 관내 21개 동사무소를 돌며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직원 200여명의 식사비 300만원을 지불한 사실이 선관위에 적발됐고 충북의 모 군수는 지난해부터 군내 택시운전사 40여명을 3차례에 걸쳐 일본에 관광성 연수를 보내기도 했다.

24일 현재 이처럼 현직 단체장의 재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에 개입한 혐의로 선관위에 적발된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249명에 이르고 있다.또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선관위가 적발한 불법선거운동 사례 3909건 중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한 위반사례는 1423건(36.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품-향응▼

6·13 지방선거 표밭을 혼탁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불법 운동 사례가 금품 및 향응 제공이다.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10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하다 쇠고랑을 찬 사람이 줄을 잇고 있고, 후보 등록을 하기도 전에 1000만원대의 돈을 뿌리다 적발된 선거 운동원도 한둘이 아니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일 6개월 전부터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돈은 물론이고 식사도 정당 행사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접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경기 파주시의 한 시의원 후보는 노인정 25곳에 265만원 상당의 떡을 돌리고 주민 경조사에 90만원을 냈다는 혐의로 23일 구속됐다. 서울 중구 김모씨(51)는 한 지구당 모임 참석자 131명에게 1인당 1만2000원짜리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성북구 문모씨(58)는 한 구청장 후보 선거 사무소 개소식 참석자 92명에게 46만원 어치의 음식을 접대한 혐의로 고발됐다.

강원 횡성군에서는 한 군수 후보 출마 예정자의 연락사무소장, 읍면 협의회장 등 33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됐다. 혐의는 연락사무소장 3명이 읍면 협의회장 30명에게 20만∼5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지급했다는 것.

대전의 한 구의원 출마 예정자도 얼마전 통반장 모임에서 통장 한 명에게 20만원을 줬다가 다른 참석자의 제보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돈 준 사람뿐만 아니라 돈 달라고 요구한 사람도 법망에 걸렸다. 경기 성남시의 한 시의원 출마 예정자는 같은 지역의 다른 시의원 출마 예정자와 만나 “내가 불출마하고 조직원 370명을 넘겨줄 테니 500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는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비방-흑색선전▼

후보들간의 비방 흑색선전도 날로 격해지고 있다.

인천에서는 시장후보들간에 아예 ‘의혹시리즈’ 내놓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박상은(朴商銀) 후보측은 19일 성명서를 내고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 후보에 대한 ‘4대 의혹’을 제기했다. △병역기피 △룸살롱 경영 △빠찡꼬 지분 참여 △경력 허위기재 의혹 등 2000년 4·13 총선 당시 안 후보의 중학교 동창인 김모씨가 폭로했던 내용들이다.

이에 맞서 안 후보 측은 23일 박 후보에 대한 ‘5대 의혹’을 제기했다. 박 후보에게 △서울 청담동 80평 빌라를 1억7800여만원으로 축소 신고 △자녀 소유재산에 대한 세금탈루 및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방전이 전례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자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이 직접 나설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강원 철원군에서는 군수 입후보 예정자가 상대 후보의 여성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전화녹취록을 배포하다 경찰에 구속되는가 하면 충남 태안군에서는 군수 입후보 예정자가 자신의 선거사무실에 경쟁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 200여통을 보관하고 있다가 제보를 받고 들이닥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경남 진해시에서는 모 시장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이 시장 내 점포를 돌아다니며 “상대후보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어 곧 구속된다”는 소문을 퍼뜨리다 선관위에 적발돼 수사 의뢰됐다.

전남 신안군에서는 기자회견을 갖고 경쟁후보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부녀회 여성부장과 이 여성부장에게 돈을 주고 기자회견을 사주한 군수 출마예정자가 선거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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