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씨 정치권 로비의혹 '제4게이트'가능성

  • 입력 2001년 12월 20일 06시 07분


‘수지 김 살해 은폐조작 사건’의 주범인 윤태식(尹泰植)씨가 대주주로 있는 ‘패스21’을 둘러싼 검은 거래는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주식을 통한 정치권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주식 로비’란 코스닥 등록을 앞둔 유망 기업이 유상증자를 하면서 주식을 예상 주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나 공짜로 로비 대상자에게 파는 로비 방식.

돈을 건네는 로비가 아니라 시장가격이 명확하지 않은 장외(場外)주식에 투자하는 형식을 갖추는 만큼 로비라는 죄의식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금융 보안분야 유망기업으로 꼽히는 이 회사 주식은 지난해 3월까지 서울 명동 사채시장 등 장외시장에서 주당 80만원 이상까지 치솟는 등 ‘예고된 황제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유상증자 때 액면가 5000원의 5배 프리미엄만 붙여 3만원에 건네졌어도 주가가 20∼30배 이상 뛰어오르는 셈이다. ‘얼굴 없는 투자자’는 앉은자리에서 최고 20∼30배의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검찰 주변에선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률 때문에 이번 사건이 ‘진승현 게이트’에 이어 ‘제4의 게이트’로 부각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윤씨의 혐의는 유상증자 때 주식에 ‘투자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20억원대의 돈을 회사에 지불하지 않은 것. 검찰은 윤씨가 이 돈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윤씨 회사가 98년 9월 설립 이후 몇 차례 유상증자를 거쳤지만 번번이 금융감독위원회에 유가증권 발행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유상증자된 주식을 ‘누구에게 주당 얼마씩에 몇 주가량 팔았는지’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숨은 배경’이 있을 것이란 의미다.

따라서 검찰은 패스21의 주주를 파악해 정치권의 대리인인지를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현재 “주식이나 돈으로 로비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한나라당 P, L 의원, 민주당 K 전 의원 등과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5년 전 살인을 저지른 뒤 안기부의 축소 은폐로 살아남은 윤씨가 사업으로 큰돈을 벌게 되자 불안심리 때문에 정치권 인사들에게 접근했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패스21은 한때 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장관을 지낸 이규성(李揆成)씨를 비상근 회장으로 영입했고 80년대 야당 원내총무를 지낸 중진의원 출신 K씨가 상임감사를 맡아 그동안 ‘정치권 연결설’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지검 특수3부는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 고발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각 언론사에 보도자제를 요청하고 수사를 계속해왔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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