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못이룬 장기수의 소망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1시 19분


이 세상 땅덩어리를 다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에게 이 돈을 전해 주시오.

간첩 혐의로 26년을 복역하다 출소한 뒤 97년 숨진 장기수 진태윤(陳泰允·당시 77세)씨는 숨지기 전 평생 모은 돈 3000만원을 북한에 남겨 둔 아들 양만씨(61년생)에게 전해달라며 남긴 유언이다. 그러나 장기수의 ‘마지막 소원’ 은 분단의 현실 앞에 부딪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97년 4월 진씨가 숨진 직후 법원에 의해 진씨의 재산관리인으로 선임된 진봉헌(陳鳳憲·45) 변호사는 “진씨가 사망한 뒤 3년 반동안 그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법률적인 노력을 다했으나 남북의 벽에 부딪쳐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고 20일 밝혔다.

진변호사는 “그동안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수차례 진씨의 아들 양만씨의 생사 확인을 신청했으나 최종적으로 개별적 생사확인이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최근 받았다” 면서 “통일부에 낸 방북허가 신청서도 북한의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 허탈해 했다.

그는 이어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양만씨가 친자로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상속이 가능하다” 면서 “한 가닥 희망은 남북한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진씨의 한을 풀어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의 상속인 수색 공고기간이 끝나는 내년 11월 말까지 양만씨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진씨가 아들만을 생각하며 피땀흘려 모은 3000여만원은 국고로 귀속될 수 밖에 없다” 며 정부 차원의 배려를 호소했다.

진씨는 1962년 남파된 뒤 바로 붙잡혀 26년간 복역하다 88년 12월 출소,97년 4월 2일 패혈증으로 숨지기까지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서 살았다. 그가 북한을 떠나올 당시 함경남도 정평군 귀림면 유송리 1번지에는 결혼한지 4년된 아내와 2살된 외아들 양만군이 살고 있었다.

<전주=김광오기자>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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