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뢰혐의 무죄판결’ 논란…김영재씨 항소심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51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영재(金暎宰)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대한 판결이 1심과 2심에서 엇갈리게 내려진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인철(申仁澈) 한스종금(옛 아세아종금) 전 사장의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배척하고 김씨의 “돈 받은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받아들인 부분이 논란의 초점.

한 검사는 “일반 뇌물 사건에서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과 ‘받지 않았다’는 사람의 진술이 대립할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해왔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가 25일 종금사 인수 합병 관련 청탁과 함께 6차례에 걸쳐 5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 부원장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핵심적인 이유는 돈을 줬다는 신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돈을 건넸다는 신씨의 주장이 계속 엇갈리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를 입증할 다른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또 “99년 1월 전달했다는 500만원의 경우 당시 김씨의 사무실에 함께 간 증인이 있기는 하지만 돈을 건네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므로 그 진술 역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6차례에 걸쳐 5700만원을 줬다’는 신씨의 진술 가운데 ‘5차례에 걸쳐 5200만원을 줬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나머지 ‘500만원’ 진술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진술이 일관되고 당시 정황도 이를 뒷받침한다”며 유죄를 인정,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신씨도 이 ‘500만원’에 대해서는 항소심 재판에서도 줄곧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5차례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거나 신뢰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나머지 1차례의 진술도 믿을 수 없으며 다른 여러 정황으로 볼 때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주심 판사인 박희승(朴熙勝) 판사는 26일 “뇌물을 줬다는 진술만 있고 이를 입증할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뇌물수수 사실을 부인해 유죄를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돈을 준 사람이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상대방의 말만 믿고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법원이 뇌물사건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명확한 증거를 요구한다면 형식논리에 얽매여 뇌물 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명백한 근거 없이 유죄를 선고하기는 어려우며 다만 전체적 정황이 범죄사실을 뒷받침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처벌할 수도 있다”며 “결국은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직관과 판단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편 같은 재판부는 4월에도 퇴출을 앞둔 경기은행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임창열(林昌烈) 경기지사에 대해 “증거가 일부 어긋나고 관련자들의 진술도 석연치 않다”며 1심 유죄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명건·이정은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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