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6일만에 남편이 일제징용 부인의 체험기 첫 공개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41분


일제강점기에 남태평양의 섬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한국인의 ‘징용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권기용(權琪容·79) 할머니는 19일 남편인 심시택(沈蓍澤·1970년 작고)씨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쓴 일기를 56년 만에 공개했다. 권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너무 괘씸해 남편이 남긴 징용일기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A4 용지 8장 분량인 이 일기에는 ‘심시택 남양 거주시 일기’(남태평양에 거주할 때 쓴 일기라는 뜻)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여기에는 징용에 끌려간 한 조선인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역사적 연구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심씨는 제2차 대전 중인 1944년 전쟁터로 끌려간 뒤 1년간 지옥 같은 노역생활을 하는 틈틈이 수첩에 기록을 한 뒤 광복 후 귀국해 이를 다시 정리했다고 한다.

일기에 따르면 심씨는 태평양전쟁이 절정이던 1944년 3월경 군함을 타고 중국 상하이(上海)와 대만을 거쳐 한달여 만에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도착했다. 그 뒤 산속에 기지를 파고 전쟁물자를 공급하는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강제노역 생활을 하던 중 한번은 미군의 공습으로 조선인 4명과 일본인 6명이 한꺼번에 숨지기도 했고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한동안 굴을 파고 고구마 잎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심씨는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뒤 한달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고 당시 조선인들은 기뻐서 춤을 춘 반면 일본군 부대장과 부하 몇 명은 자살했다고 적고 있다.

심씨는 그해 12월10일 조선인과 일본인 등 1600여명과 함께 일본 하카타(博多)항에 도착해 지내다 15일 부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끝맺었다.

심씨는 29세 되던 40년 4월 권 할머니와 결혼한 지 6일 만에 징용에 끌려갔다. 그는 귀국 후 권 할머니와 상봉해 함께 생활하다 1970년 징용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59세 때 사망했다.

권 할머니는 남편의 징용기간 중 노임으로 추산되는 보상금 5000만원(당시 돈 500원)을 받아내기 위해 현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권 할머니는 “보상금으로 일제에 의해 희생된 남편의 징용생활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청송〓정용균기자>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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