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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2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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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시간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정씨의 알리바이(현장에 없었다는 증명) 성립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시체를 부검한 당시 춘천도립병원 외과 과장과 시체내용물을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의 사망시간 추정도 편차가 커 논란을 가중시킨다.
▽장양의 행적과 정씨 알리바이〓장양의 어머니 이모씨(당시 38세)는 장양이 사건 당일인 72년 9월27일 ‘어둑어둑할 무렵’ 저녁을 먹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당시 중앙관상대(현 기상청) 기록에 따르면 당일 일몰시간은 오후 6시19분이고 이때부터 완전히 어두워지기까지는 35분이 걸릴 정도였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장양이 저녁 7시 무렵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씨 본인의 주장과 수사기관의 조사내용이 크게 다르다. 정씨는 법정에서 당일 저녁 8시까지 자신의 집에 있다가 20분쯤 후 280여m 떨어진 만화가게로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정씨가 저녁 8시경 집을 나서 8시반경 만화가게 앞에서 장양을 우연히 만나 620여m 떨어진 농촌진흥원 옆 논둑으로 가 8시50분경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정씨 주장과 검찰 조사에서 공통적인 것은 정씨가 저녁 8시까지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 사실은 사건 당일 정씨 집에서 공사를 했던 목수들의 증언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장양 사망시간(범행시간)〓장양의 시체는 범행 다음날인 9월28일 이른 아침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시체를 춘천도립병원으로 옮겨 이 병원 외과과장 이양(李洋)씨에게 부검을 의뢰했다.
이 과장은 부검 직후 감정서를 제출했는데 그는 감정서에서 “위(胃) 내용물이 거의 원형대로 유지돼 있는 점으로 미뤄 식사 후 30∼50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과장의 부검소견이 정확하다면 장양은 늦어도 저녁 7시50분 이전에 사망한 셈이 된다. 따라서 정씨의 알리바이가 입증된다.
그러나 경찰이 국과수에서 제출받은 감정서에는 사망시간이 다르게 기록돼 있다. 내용물을 감정한 정모씨(당시 33세)는 K대 생물학과 출신의 연구원. 정씨는 10월11일 작성한 감정서에서 “시체의 위 내용물로 미뤄볼 때 식후 1∼2시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씨가 실제로 감정을 한 날짜는 정확히 언제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정씨는 법정에서도 감정실시 날짜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또 취재팀도 그의 현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어쨌든 국과수 감정서에 따르면 장양의 사망시간은 저녁 8∼9시다. 경찰과 검찰은 이를 근거로 정씨가 8시50분경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짓고 기소했다.
▽법의학 전문가 의견〓전문가들은 위 내용물로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것 자체가 정확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한영 국과수 법의학과장은 “정말 다른 근거가 없는 절박한 경우에만 위 내용물을 근거로 사망시간을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장은 “상대적으로 사망 직후 부검을 한 것이 정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황적준 교수도 “시반(시체의 반점)과 시강(시체 경직도), 위 내용물과 시체 온도 등 광범위한 모든 것들을 따져서 그것들이 모두 겹치는 시간대를 사망시간으로 추정한다”며 “위 내용물 분석은 부검내용 중에서도 가장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수형·이정은기자>sooh@donga.com
▼부검의 이양씨 인터뷰▼
‘강간살인’사건 피해자 장모양의 시체를 부검한 당시 춘천도립병원 외과과장 이양(李洋·59)씨는 그후 국군수도통합병원 외과과장 등으로 재직하다 78년 고향 진주로 내려가 개인병원을 차렸다. 현재 진주고려병원장으로 재직중인 그를 13일 병원 사무실에서 만나 부검경위와 내용에 대해 인터뷰했다.
―부검과정과 소견은 어땠나.
“부검을 할 때 가장 먼저 피해자의 위 내용물을 확인했다. 저녁에 먹은 칼국수와 콩나물 등이 원형 상태를 유지하며 거의 그대로 위에 남아 있었다. 보통 정상인의 경우 식후 4시간쯤이면 음식은 위에서 모두 소화돼 위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또 1시간 이상 지나면 강한 위액에 소화돼 음식물의 원형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건 피해자의 위에는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토대로 피해자가 저녁을 먹은 후 1시간이 넘지 않은 시간에 사망했다고 판단했고 좀더 면밀히 관찰해서 사망시간은 식후 30∼50분이라고 소견서를 작성했다.”
―부검소견이 얼마나 정확하다고 보는가.
“100% 들어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소견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며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30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당시 나는 의사가 된 이래 처음으로 부검을 실시했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거의 소상히 기억한다.”
그는 “통상 살인사건에서는 부검의사의 소견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져 부검의견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 사건에서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주〓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