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銀사건 판결 의미]'박지원의혹' 다시 물위로

  • 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48분


한동안 잠잠했던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한빛은행 대출외압 의혹이 13일 서울지법의 판결문을 통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판부의 의혹제기는 검찰의 수사와 국회의 국정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여론에 법원도 공식 동의했다는 의미가 있다.

의혹제기의 ‘논리’는 매우 간단하고 일반인의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대전제는 한빛은행 이수길(李洙吉)부행장 등 은행 고위층이 2000년1월 관악지점에 대한 정밀검사를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이부행장은 아크월드 사장 박혜룡(朴惠龍)씨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의 청탁’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박씨와 박전장관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해 보이므로 문제의 외부 청탁자는 박전장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의혹의 근거로 삼은 ‘사실관계’는 모두 수사와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고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재판부의 의견 이상의 가치가 있느냐” 또는 “증거로서 말해야 할 법원이 증거로 확인되지 않은 언급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재판부는 “강한 의심이 드나 수사기록과 진술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명시했으며 판결문 곳곳에 ‘추측된다’ 또는 ‘보인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일부 법조인들은 이번 판결을 최근 법원이 옷 로비 의혹사건 등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번 판결이 검찰의 재수사로까지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속성상 진실은 관련자의 마음속에 있고 검찰로서도 ‘자백’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재판부가 박씨와 신창섭(申昌燮)전 지점장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는 등 중형을 선고한 것은 경제사범에 관대한 우리 법원의 판결례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판결에 대해 피고인들은 모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도 박전장관의 외압여부에 관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외압부분 관련 판결문▼

(중략)…위 사실에 비추어 보면 늦어도 2000년 1월 18일경 관악지점에 대한 수시검사 직후 정밀검사를 실시하였더라면 이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불법대출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에도 위와 같은 이수길 부행장, 이촉엽 감사 등의 지시나 전화 등으로 인하여 정밀검사가 실시되지 않아 부실기업인 아크월드 등에 대한 부도처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위 범행이 2000년 2월 초부터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 사건 범행의 발생에 있어 이수길 부행장 등 상부의 지시, 본점 검사부의 검사유보가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수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이수길 부행장과 피고인 박혜룡 사이에 별다른 친분관계가 없다는 것이므로 이수길 부행장의 위 지시 등은 외부의 청탁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위에서 본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박혜룡과 박지원 전장관의 친분관계가 피고인 박혜룡이 이 법정에서 주장하는 것보다는 그 이상으로 돈독해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박지원 전장관이 피고인 박혜룡의 부탁으로 이수길 부행장 등 한빛은행 상부에 관악지점에 대한 검사 등과 관련해 청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드나, 검사가 제출한 수사기록이나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 등만으로는 더 이상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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