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얘기 그만하라"…민주당 지도부 '혼쭐'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2분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12일 바닥민심 체감을 위해 5개조로 나눠 서울과 경기, 인천지역의 민생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민생현장 방문 후 한결같이 바닥민심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시장▼

서영훈(徐英勳)대표와 김중권(金重權)최고위원이 방문한 구로시장에서는 “장사가 안돼도 이렇게 안될 수 없다”는 상인들의 호소가 이어졌고, 서대표는 “아이고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포목상을 운영하는 유모씨는 “35년 장사하면서 이렇게 살기 힘든 경우는 처음”이라며서대표에게 “제발 칭찬받는 분들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또 속옷가게를 하는 전남 출신의 송모씨는 “하루 16시간씩 장사를 해도 부모님 용돈조차 못드릴 지경”이라며 “대통령이 됐을 때는 너무 자랑스러웠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대표는 시장통 곳곳에서 상인들의 호소가 이어지자 심각한 표정으로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때나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때보다는 어떠냐”고 물었고, “그 때보다는 물론 어렵고, IMF 체제 직후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을 듣자 “아이고, 지금이 어려운 때는 어려운 때”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인천▼

인천을 방문한 박상천(朴相千)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지구당위원장 및 간부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지역민심이 가감없이 전달됐다. 다음은 대화요지.

▽박상규(朴尙奎)시지부장〓지역을 다닐 때 곤혹스럽다. 인사와 경제 문제 때문이다.

▽박상천최고위원〓민심이반의 원인은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정치 사회 분야의 불안 때문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집권당이 못돼 비판을 받고 있다.

▽정동영최고위원〓국민이 집권당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다. 민심과 맞서 싸우는 정권은 역사에 없었다. 민심을 안고 가야 한다.

▽모 지구당 사무국장〓(아무 얘기나 해도 되느냐고 물은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제발 노벨상 얘기를 그만해야 한다. 최고위원들은 얘기 많이 들어라.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죄송하다고 하라. 뺨을 때리면 맞아라.

▽모 구의원〓대우사태 때문에 지역경제가 폐허 상태다.

▽모 원외위원장〓대통령 주변에 쓴 소리는 없고 충성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된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입당을 권유하면 민망할 정도로 거부한다.

▽이호웅(李浩雄)의원〓위기가 실제상황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밖에 나가 있으니 여당의 정책위의장이 사표를 내도 누구 하나 수습하지 않는다.

▽서정화(徐廷華)전의원〓경찰서장이 새로 와도 여당위원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

▼서울 성동 등▼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이 방문한 서울 성동지구당에선 한 지방의원이 “‘8·30’ 전당대회 이후 4개월간 최고위원들이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권력투쟁으로 내분만 일으켰다”며 “도대체 국민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권노갑(權魯甲) 장태완(張泰玩) 최고위원이 방문한 경기 평택에서도 “초등학생이 욕을 할 정도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등 당직자들의 불만과 질책이 잇따랐다.

경기 동두천―양주지구당을 방문한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은 당직자들로부터 ‘동교동계 2선 퇴진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최고위원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진땀을 흘렸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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