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현게이트 국제파문 비화]리젠트 '막후 작전' 의혹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52분


《검찰이 제임스 멜론 i리젠트그룹 회장을 수사키로 함에 따라 진승현 사건의 파문이 국제적 규모로 비화되고 있다. 금감원과 검찰은 진승현 사건의 실질적인 배후는 홍콩에 본사를 둔 i리젠트그룹의 멜론 회장이며, 진승현씨나 고창곤 전 리젠트증권 사장은 단순 하수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금감원은 99년 10∼11월 리젠트증권 주가조작 혐의로 진씨와 함께 고 전사장을 10월 24일 검찰에 통보한 상태다. 멜론 회장도 금감원이 자체조사하려 했으나 조사에 응하지 않자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리젠트종금에서 예금인출이 잇따르고 있어 자칫 지불불능 사태가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멜론 회장, 진씨에게 주식 사달라고 요청했다〓금감원 조사결과 멜론 회장은 지난해 10월 진씨에게 리젠트증권 주식 150억원어치를 사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멜론 회장이 나중에 되사는 조건으로 진씨를 동원해 주식을 매집했다는 것. 리젠트측의 요청에 따라 진씨는 작년 10월 7일부터 11월 19일까지 주식을 집중적으로 샀다.

이때 리젠트그룹은 리젠트증권 자사주를 법이 허용하는 한도껏 사놓은 상태였고 홍콩리젠트계정을 통해서도 주식을 매집했다. 즉 한도 이상의 자사주를 확보하기 위해 제3자(진승현)를 활용하는 편법을 쓴 것.

진씨는 증거로 올 2월19일 코리아온라인(KOL) 애버링턴 회장이 자신에게 보낸 E메일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이미 매집된) 리젠트증권 주식 576만1050주를 주당 5194원에 매입하고 연15%의 이자를 줄 용의가 있으니 주식매수 서류 복사본을 보내달라”고 돼 있다.

▽멜론 회장의 주장〓리젠트그룹 관계자는 “진씨에게 주식매집을 요청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주가를 올리는 작전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진씨는 주식 매집 과정에서 8개 계좌를 동원해 고가매수 허위매수주문 통정(通情)매매 등 다른 사람의 매매를 유인하는 등 시세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의 전 리젠트증권 사장 고창곤씨의 역할. 고씨는 진씨에게 리젠트증권 회사돈을 280억원이나 빌려줬다. 리젠트증권이 콜론으로 이머징창투를 통해 280억원을 빌려주고 이 돈이 진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MCI코리아에 들어간 것. 이 때문에 금감원은 고씨가 진씨에게 주가조작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해 고씨를 진씨와 함께 검찰통보 조치했다.

금감원은 또 멜론 회장의 역할도 의심하고 있다. 박태희(朴太熙) 금융감독원 조사1국장은 “멜론 회장이 주가조작을 사주했거나 최소한 방조한 혐의가 짙어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씨는 이 자금을 MCI코리아에 빌려 준 이유가 이머징창투가 이자를 3∼5% 더 높게 쳐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리젠트는 왜 진씨에게서 주식을 다시 사지 않았나〓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 대목. 진씨는 올 1월 KOL에 “576만주(총발행주식의 8%)를 주당 6000원(액면가 1000원 기준)에 매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KOL측은 “당시 진씨가 이만한 물량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진씨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아 매입을 일단 보류했다”고 밝혔다. KOL측이 2월 19일 띄운 E메일은 주식보유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씨를 떠보려는 목적이었다는 것. 그래서 증빙서류를 요구했지만 내용이 불충분했고 결국 거래도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때는 주가가 떨어진 시점. 진씨는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보게 되자 리젠트측이 매입을 거부했다”며 분개했다. 주식을 리젠트에 넘기지 못한 진씨는 이후 주가폭락으로 1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또 증권거래소가 이미 주가작전에 대한 냄새를 맡고 금감원에 통보한 시점과도 일치한다.

결국 진씨와 고씨 등에 대한 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KOL측이 연결 고리를 끊으려고 했다는 게 금감원의 관측이다.

▽의혹에 싸인 리젠트그룹〓금감원은 리젠트증권 주가조작과 관련한 멜론 회장의 역할을 밝히기 위해 그에게 2차례나 출석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멜론 회장은 “사업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어쩔 수 없이 수사의뢰 형식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

의혹은 리젠트그룹이 왜 법망을 피해가면서까지 자사주를 매입하려 했는지에 모아진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리젠트그룹이 주가를 끌어올린 후 리젠트증권을 비싼 가격에 다른 데다 팔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니면 리젠트 금융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KOL을 매각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리젠트증권 주가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금감원 실무진은 장장 9개월에 걸친 조사를 끝내면서 멜론 회장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검찰이 풀어야 할 고리가 만만찮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리젠트 그룹은?▼

i리젠트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리젠트그룹이 아시아투자를 전담하기 위해 90년에 설립한 회사. 97년 5월 홍콩증권시장에 상장됐다. 국내에서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3월, 대유증권(현 리젠트증권)을 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i리젠트그룹은 이어 보험 증권 종금 자산운용 등을 포함한 통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주회사인 코리아온라인(Korea Online·KOL)을 설립했다. 99년 12월 경수종금(현 리젠트종금)을 4500만달러에 인수하고 올 3월에는 해동화재(리젠트화재)를 사들였다. 이를 위해 KOL에 1억1700만달러를 출자했다. 10월28일에는 미국 위스콘신주 투자위원회와 공동으로 9800만달러를 투자해 일은증권 주식 272만4000주(지분 19.63%)를 439억원에 사들였다. 8월에는 리젠트자산운용을 순수 외국인 회사로 설립했다.

i리젠트그룹은 위스콘신주 투자위원회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한생명을 1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KOL은 자본금이 9억달러이며 i리젠트그룹이 40%로 최대주주다. 이밖에 위스콘신주 투자위원회 26.7%, 진승현씨가 대표로 있는 MCI코리아가 13.3%, 기타 20% 등이다.

한편 멜론 회장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영국인으로 GT매니지먼트와 손톤 그룹에서 아시아담당 상무이사로 근무한 바 있다. 90년 i리젠트그룹을 공동 설립해 대표이사가 된 후 94년 i리젠트그룹 회장이 됐다. 그는 아시아에 20년 이상 투자한 경험을 갖고 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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