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카지노 개장]"카지노는 우리의 미래"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08분


28일 개장하는 국내 첫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강원 정선군 고한읍)의 초보 딜러 천현희(千賢姬·21)씨. 그녀에게 카지노는 꿈이자 미래다. 아버지 천봉룡(千奉龍·54)씨는 25년째 탄광 막장에서 생활해온 광원이고 어머니 최숙자(崔淑子·48)씨는 쪼들리는 살림에 1남4녀를 키우느라 등골이 휜 주부다. 내년 사북읍과 고한읍에 마지막 남은 탄광 두 곳이 문을 닫으면 집안에 돈을 버는 사람은 차녀인 그 혼자다.

“5월에 입사가 확정됐을 때 아버지가 가장 기뻐했습니다. 부모님께 집을 한 채 사드리고 결혼할 생각입니다.”

그는 교육이 힘들어 많이 울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금세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연봉은 2000만원선. 고객의 팁까지 감안하면 3000만원은 넘을 것이라는 게 카지노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그의 꿈은 곧 이곳 고한읍과 사북읍 주민들의 꿈이다.

개장을 20일 앞둔 8일 고한읍. ‘영동택시’에서 ‘카지노택시’로 이름을 바꾼 택시회사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카지노 PC방’ ‘카지노 다방’ 등 온통 카지노 일색이다. 여기에는 95년 ‘핵폐기물 처리장이라도 유치해 달라’고 시위를 벌일 만큼 절박했던 폐광 주민들의 생활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나 종합 관광지로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하게 카지노장이 개장돼 주민들의 꿈은 위기를 맞고 있다. 벌써부터 유흥업소가 늘고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것. 정작 필요한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은 절대 부족해 ‘도박장만 있고 관광지는 없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95년 서울로 떠났다가 올 봄 고향인 고한읍으로 돌아와 일식집을 차린 남진만씨(44)는 “부유층이 올 만한 음식점은 거의 없고 숙박시설도 여인숙 수준을 넘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9월 인구 2만 남짓의 고한읍내에 M룸살롱이 문을 열었다. 주민들이 몰려가 시위를 벌였지만 개점을 막지는 못했다. 인근 음식점 주인은 “서울에서 접대부 10여명이 이 술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룸살롱 외에도 올 들어 다방과 술집이 줄잡아 20곳 이상 늘었다.

고한여자종합고 2학년 유미영양(17)은 “요즘 밤이 되면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들이 술집 주변을 서성인다”며 “카지노가 뭔지는 모르지만 무섭고 싫다”고 말했다.

폐광 경제를 살리기 위해 카지노가 생겼지만 정작 주민들의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원랜드는 이 지역 출신을 우선 고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직원 중 폐광지 출신은 25% 남짓. 동국대 관광경영학과 이충기교수는 “강원랜드측이 고용할 만한 지역주민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주민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난도 심각하다. 주변 개발로 유입인구가 늘어났지만 주택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북읍 도사곡 주공아파트 13평형은 올해 초 1500만원선이었으나 현재 2600만원을 호가한다. 정선군이 내년 초 도시계획을 확정하면 부동산 투기 바람도 거세질 전망이다.

지역주민들의 도박중독에 대한 예방책도 없는 상태. ‘고한―사북―남면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 송재범위원장은 “카지노가 눈앞에 있는 이상 지역 주민의 도박중독과 같은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며 “주민의 카지노 출입 제한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선〓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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