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확인 대상 이산가족]“제발 살아만 있었으면…”

입력 2000-10-01 18:44수정 2009-09-22 02:3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생사확인만 된다면 이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어요.”

1일 선정된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대상자 100명 중 한명인 강진선(康鎭善·77·서울 서대문구 홍제2동)씨. 6·25전쟁 발발 후인 50년11월 인민군 징집을 피해 숨어 있던 평남 대동군 금제면 원당리 처가를 떠나 단신으로 피란길에 올랐을 때 남겨 두었던 처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친다.

살아 있다면 부인 김선비씨는 76세, 여섯살난 아들 정남이는 벌써 56세가 됐겠지만 홀로 남녘으로 내달린 ‘죄책감’에 강씨의 마음 한 구석은 늘 편치 못했다.

한동안 평양시립극단에서 연극배우로도 활약했던 강씨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급히 피란길에 올라 당시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전북 익산까지 걸어 내려왔다. 낮을 피해 밤길만 내달려 온 25일간의 강행군이었다.

남쪽에 내려와 군에 입대한 강씨는 제대 후 인천에서 둥지를 마련, 15년 동안 모 극장의 선전부장을 맡았다. 당시 영화 간판을 그린 강씨 밑에는 작고한 코미디언 서영춘씨 등이 한때 같이 일했다. 인천에서 머물던 58년 무렵, 지금의 부인 천수일씨(70)를 만나 아들 3명을 낳고 단란한 가정도 이뤘다.

“(우리 가족의 생이별은) 하늘이 한 것이지요. 지금의 아내와 아들들도 북한의 처자에 대한 저의 생사확인 요청을 흔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함남 함흥에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들을 남겨두고 온 김복녀(金福女·73·서울 관악구 신림3동)씨도 애타는 그리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93세, 쌍둥이 동생들은 59세.

간호사 생활을 하다 50년 전쟁발발 직후 “‘잠시 남쪽에 있는 언니(김한복씨·77) 집에 내려가 있겠다’고 했던 말이 생이별의 전주곡이 될 줄은 몰랐다”며 김씨는 울먹였다.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박광숙(朴光淑·86)할아버지는 1·4후퇴 당시 예성강 부근에서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헤어진 당시 열한살 난 아들 생각에 지금도 잠을 못 이룬다. 황해도 봉산군 전산리에서 살다가 월남한 그는 그 후 5남매의 자식을 뒀지만 큰아들 덕이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더 늙기 전에 아들을 만나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사확인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의정부〓이동영기자>jyw11@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