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부여 비피해 르포]"쌀밥 구경은 틀린겨"

  • 입력 2000년 8월 28일 19시 02분


집중호우가 물러간 28일 오후 충남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을 잇는 황산대교 밑 금강변. ‘흙탕물바다’ 곳곳에는 비닐하우스들이 누렇게 변한 지붕만 드러내놓고 있었다.

“망쳐버렸어. 이젠 쌀밥 구경하긴 틀린 겨.”

지난해말 금강변 하천부지 경작권을 구입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박일규(朴一圭·35·부여군 세도면 가회리)씨는 수마에 휩쓸린 자신의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댔다.

▼비닐하우스 지붕만 점점이▼

6년 동안 트럭운전사로 일했던 박씨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의 여파로 수익이 줄어들자 고향으로 돌아와 지난해 3500만원을 들여 2400평에 비닐하우스 시설을 갖추고 겨우내 방울토마토 재배에 정성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오렌지가 대거 수입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귀농 첫해의 대차대조표는 3000만원 적자. 박씨는 “네 식구 끼니만이라도 해결하려고 토마토 줄기를 걷어낸 뒤 뒤늦게 벼를 심었으나 이삭이 패자마자 흙탕물에 고스란히 넘겨주게 됐다”며 울먹였다.

이번 비로 4000여평의 하우스 콩과 벼를 몽땅 날렸다는 임병직(林炳稷·44·부여군 세도면 귀덕리)씨도 지난해 “방울토마토만 잘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5000만원을 들여 부농의 꿈을 키웠으나 가격폭락으로 박씨처럼 시련을 맞아야 했다.

▼수십년째 하천세만 받고…▼

임씨는 “이곳에서 수백가구가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데 ‘방울토마토 잡은 게 수입오렌지’라며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면서 “이제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임씨와 함께 있던 김종철(金鍾哲·31)씨는 당국의 무성의한 수방대책을 질타했다. 면사무소에 하천세를 평당 140원씩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김씨는 “당국에 배수시설을 해 달라고 한 게 수십년은 됐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면 하천세나 받아가지 말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부여군 세도면은 특용작물 산지여서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그래도 농촌에 남아 있는 곳인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이들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이날 금강 제방에서는 주민들이 넋을 잃은 채 물 빠지기만을 기다리며 흙탕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부여〓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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