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政 협상 주역]이용근-이용득 98년 첫 만남

  • 입력 2000년 7월 12일 00시 14분


7일 첫 협상부터 11일 극적 타결까지 이어진 ‘100시간의 드라마’의 중심에는 이용근금감위원장과 이용득금융노조위원장이 있었다.

두 사람은 100시간 동안 5차례의 공식 회담과 2차례의 실무 협상을 거치며 21세기 한국 금융산업의 밑그림을 제시할 금융지주회사법 통과 합의에 성공했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은 98년 9월 1차 구조조정 당시로 거슬러간다. 이들은 5개 은행 퇴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당시 금감위 상임위원과 금융노련 부위원장(상업은행 노조위원장)으로 13시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주도했었다.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는 이번에도 계속됐다.

파업 돌입을 코앞에 둔 10일 밤 4차 협상과 11일 오전 실무 협상에서 고성이 흘러나오고 이용득위원장이 11일 새벽 4시반 회담장을 박차고 뛰어나오는 순간까지만 해도 타결은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용득위원장은 기자들에게 “현장에서 봅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11일 오후 두 사람의 명동성당 교육관에서의 독대. 오후 2시반경에는 하익준 금융노조 정책부장이 “정리할 사항이 있다”며 노트북 컴퓨터 반입을 요청했다. 협상장 밖에서는 “타결된 합의문이 작성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이 때부터 10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후 3시경 한 통신사는 ‘협상 타결’로 1보를 내보내 노조측 관계자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1시간 이상 끌던 협상은 3시50분경 금융노조 하익준정책부장이 나와 ‘협상 결렬’을 알리면서 급반전됐다. 하부장은 “타결 소식은 연세대에 집결한 2만 조합원의 파업 대오를 흩뜨리기 위한 교란 작전”이라고 정부측을 성토했다.

결렬로 가닥이 잡히려는 순간 김호진(金浩鎭)노사정위원장이 “협상이 거의 타결됐다”며 5차 협상이 이어질 것을 알리면서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후 오후6시반경 은행회관엔 노조지도부가 속속 도착해 협상에 임했으며 7시반경 김노사정위원장이 노정간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정부측 관계자는 “일부 은행의 파업 철회로 노조지도부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며 “오후부터는 노조가 밀리기 시작했다”고 최종 협상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용득위원장이 “기업 외환은행의 파업 철회에 가슴이 쓰라렸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두 은행의 파업 철회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정부 관계자는 분석하고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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