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어부 30년만에 脫北

  • 입력 2000년 6월 3일 06시 39분


30년 전 서해상에서 납북됐던 어부 이재근(李在根·62)씨와 그가 북한에서 결혼한 아내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북한을 탈출, 제3국에 머물다 귀환 중이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저인망어선인 봉산22호 선원이었던 이씨는 70년 4월29일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 중 동료 26명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 납북자 중 19명은 7개월 만인 11월29일 어선과 함께 송환됐으나 이씨 등 8명은 북한측에 의해 강제 억류됐다.

이씨는 북한에서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간첩 양성기관인 중앙당 정치학교에 입교해 2년6개월간 남파간첩 특수훈련을 받았으나 사상불량으로 대남공작부서에 배치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5년간 함남 함주군 선박전동기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던 이씨는 98년 8월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 2년간 제3국에서 어렵게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81년과 85년 원산연락소에서 납북어부들을 대상으로 한 재강습을 받았으며 그때 함께 생활했던 납북어부들 중 25명(3명은 사망)과 정부의 납북 억류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7명(1명은 사망) 등 32명에 대해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관계 당국에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정부가 발표한 납북 억류자 454명 명단에 포함돼 있다.

한편 이씨의 형 재원(在元·65·울산 남구 달동)씨는 “중국으로 동생과 함께 탈출한 제수씨한테서 98년 처음 전화가 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동생은 납북된 뒤 탄광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해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동생이 납북된 뒤 무당에게 물어 보니 죽었다고 해 매년 음력 9월9일(죽은 날짜를 모를 경우 이날 제사를 지냄) 제사를 지내왔다”며 “탈북한 동생의 신원이 노출돼 혹시 신변에 위협을 받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들 형제는 그동안 몇차례 전화 통화와 편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철기자·울산〓정재락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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