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총선]네거티브 캠페인 판치는 선거운동 현장

  • 입력 2000년 4월 8일 19시 23분


최근 서울 모지역 합동연설회장에서 한 야당후보가 연설 도중 분을 참지 못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병역을 면제받아 타 후보의 집중공격을 받은 이 후보는 면제 이유를 유권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다친 발을 공개한 것.

이 후보는 연단에 발을 올려놓고 “나는 발병신이다. 발병신이 어떻게 군대를 가느냐”며 타당 후보 운동원을 향해 “당장 연단에 올라와 내 발이 성한지 살펴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후보들의 납세실적 병역 재산 등에 이어 전과기록까지 낱낱이 공개되자 몇몇 경쟁후보들이 신상공개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자신의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타 후보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일명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선거를 몰아가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정책과 공약은 뒷전이 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들이 이번 선거를 “사상 최악의 헐뜯기 선거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현재 접전을 벌이고 있는 수도권 대부분의 후보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총학생회장 출신 386후보와 맞붙은 한 야당후보는 △집중적으로 색깔론을 제기할 것 △상대후보가 납세실적이 없다는 점과 병역을 마치지 않은 점을 부각시킬 것 등을 주요 선거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후보측 한 참모는 “‘저 후보는 빨갱이다’ ‘세금을 한푼도 안냈다’는 한마디가 100가지 공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참모는 “상대후보가 학생운동 이후 구속을 당하는 바람에 군대를 못갔고 재산이 없어 세금을 못낸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선거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이 아니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유권자의 무관심도 이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부추기고 있다. 후보자의 전과나 납세내용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떠도는 말만 믿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특정 후보의 납세와 병역문제가 쟁점이 된 지역구의 조모씨(32)는 “누가 퍼뜨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보에 관한 악소문이 자자하다”며 “이유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그 후보는 안 찍는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인물 자격에 대한 논쟁 외에는 쟁점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네거티브 캠페인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서강대 손호철(孫浩哲·정치학)교수는 “과거에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등 일정한 정치적 쟁점이라도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쟁점이 전혀 없어 헐뜯기만 판을 치고 있다”며 “건전한 정책선거를 이루기 위해 부정부패나 파렴치한 전과가 있는 후보는 아예 법적으로 출마를 금지시키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김명남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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