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구제역 사람에 전염…정부 알고도 숨겨

  • 입력 2000년 3월 31일 23시 33분


사람에게 전혀 해가 없다는 구제역이 정부 발표와는 달리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에게는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31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제역은 감염된 가축과 직접 접촉하거나 우유를 통해서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으며 감염된 사람은 2∼8일간의 잠복기간을 거쳐 입과 발등에 물집이 생기고 발열 구토 두통 식욕부진 등 감염 가축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사람은 가축과 달리 사망하는 경우는 없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다가 1∼2주 후에는 자연 치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육류나 육가공제품 섭취를 통해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으며 우유도 초고온 살균을 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사람이 구제역에 대해 양성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수의학 전문가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로 ‘수의 공중보건학’(문운당 간) 등 수의학 교과서에도 나온다.

농림부는 이 같은 사실을 내부 문건을 통해 상부에 보고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부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훈 농림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구제역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내부보고 사실을 부인하고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말만 믿었다”고 해명했다.

이번에 경기 파주지역에서 발생한 병의 질병명에 대해서도 정부는 ‘의사 구제역’이라고 밝히고 “구제역인지 여부는 4일경에 밝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전문가들은 이미 정부가 구제역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간을 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 수의학과 박봉균교수는 “정부가 발표는 ‘의사 구제역’이라고 했지만 실제 대책을 보면 구제역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유전자진단법으로 구제역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2, 3일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본 대만에 이어 미국과 호주가 31일 한국산 우제류(발굽이 둘로 갈라진 네발 동물) 및 그 생산물에 대해 수입을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혀 수출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발생지역으로부터 반경 20㎞이내 지역에 있는 가축 35만여 마리를 조속히 도축하고 전량 수매하겠다고 31일 오전 발표했다가 오후에는 이를 취소하고 주민이 원할 경우 우선 수매하겠다고 정정 발표했다. 김농림부장관은 이날 오후 파주에서 현지 대책회의를 열고 ‘의사 구제역’으로 도축된 가축과 소각 폐기된 우유 사료 등에 대해서는 재해지역에 준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동제한 사육감축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기존 대출자금에 대해서는 이자 감면, 상환 연기 등 재해에 준하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중국 등 구제역 발생지역으로부터 가축용 건초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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