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추적 오늘의 이슈]변호사들도 벤처…벤처로…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요즘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화두는 단연 ‘벤처열풍’이다.

‘누구는 몇만주의 스톡옵션을 받고 A벤처로 옮겼고 누구는 1억원을 투자해 몇십억원을 벌었다.’ 지척의 거리에 있는 벤처중심가 ‘서울벤처 밸리’의 벤처 열기가 서초동 법조타운에까지 급속도로 전파되어 너도나도 만나기만 하면 이런 유의 벤처 성공담이 화제에 오른다.

변호사업계에서는 본업인 송무(訟務·재판과 관련된 업무)를 뒷전으로 하고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변호사들과 될성부른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 ‘떼돈’을 번 동료들의 뒷얘기가 무성하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서류를 들고 법정에나 왔다 갔다 하는 일상의 업무에 안주하다 이대로 종치는 것 아니냐”는 자조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변호사 업계의 벤처 붐은 인터넷과 법률서비스를 결합하는 시도를 해 온 소장 변호사들 이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 법률정보 사이트인 ‘오세오(www.oseo.co.kr)’를 운영해온 최용석(崔容碩)변호사는 올 1월부터 동료 변호사 2명과 함께 송무업무를 전면 중단하고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 변호사 로이(Lawie)의 개발로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오세오월드를 이달중 벤처기업으로 정식 등록할 예정. 이 회사는 99년 5월 자본금 3억원으로 출범했으나 이후 주식공모와 기관투자가들에 대한 투자유치 등을 통해 현재 자본금이 28억원으로 늘어났다. 각종 법률서비스 제공에 참여하는 변호사는 100여명인데 이중 주주만 50여명.

네티즌들에게 각종 법률 정보를 무료로 제공해 전국민 ‘1인 1자문변호사’의 기능을 맡고 보험회사 등 기업이나 사이버아파트들에 유료 법률상담 서비스나 인터넷 포털서비스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수익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동아일보와 ‘인터넷 무료법률상담’ 행사를 함께 했던 정강법률포럼(대표 조소현·趙沼鉉변호사) 역시 ‘법조정보화’를 화두로 한 선구적인 벤처 사업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 가입변호사만 100여명인 정강포럼은 조변호사 등 초기 멤버 변호사 6명이 주주가 돼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설립한 인터넷 기획벤처회사인 ㈜로서브(대표 이동호·李東虎)와 인터넷 기술벤처회사인 ㈜베스트인터넷(대표 이한순·李漢淳)과 제휴해 내실을 다지고 있다.

로서브의 경우 지금까지 변호사와 법무사 등 100여명이 주주 또는 회원으로 참여해 자본금이 3억4000만원으로 늘었다. 로서브는 변호사 업계의 인터넷 환경 개선 등 법조정보화를 주요 사업목표로 하고 있으며 장차 인터넷(www.lawhelp.or.kr)을 매개로 소비자와 변호사를 연결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구상.

인터넷을 통한 법률사건 경매회사인 ㈜로마켓(www.lawmarket.co.kr)의 주인중(朱寅重)변호사도 1월 이 회사를 중소기업청에 벤처기업으로 등록했다. 현재 참여변호사는 70여명이며 장차 회원제 유료 서비스와 광고수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때 구속됐던 김태정(金泰政)전 법무장관도 비슷한 취지의 사이버 로펌(www.lawsee.com)을 4월중 출범시킬 계획으로 알려져 원로법조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들처럼 직접 벤처사업에 뛰어드는 대신 서울의 K변호사는 한 인터넷 벤처회사에 17억원을 투자하고 스톡옵션을 받았다가 주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바람에 2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벤처투자업체’ 사장으로 전업하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벤처기업에 대한 법률과 금융자문 등을 하는 ‘벤처를 위한 벤처’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열린합동’과 합병을 결정한 법무법인 ‘세종’의 소장 변호사 10여명은 합병과 동시에 독립해 벤처지원 법률사무소를 차릴 것으로 전해졌다.

연수원 19기 출신의 김정욱(金政旭)변호사는 공인회계사들과 함께 서울대 주변의 벤처사들을 상대로 한 컨설팅회사를 설립해 현재 성업중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일부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들은 “벤처가 되겠다”며 사무실을 떠나려는 젊은 변호사들을 달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 유수의 로펌소속 한 원로 변호사는 “(로펌의 젊은 변호사들이) 과거처럼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도 없고 노동 강도는 날로 심해져 동요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탈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벤처 열풍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론 잘하는 변호사가 최고다”라는 ‘회의론’과 “시대의 흐름에 변호사들도 따라가지 않으면 결국 도태한다”는 ‘지지론’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지지론이 점차 세를 얻고 있는 분위기다.

2월 정강법률포럼에 가입한 K변호사는 “벤처로 변신은 못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가입했다”며 “사이버화에 부응하는 이들 법률 벤처들이 장차 업계의 구조와 판도를 확 뒤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석호·부형권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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