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철 피랍극' 3대 의혹]용의자 잡고도 무혐의 처리

  • 입력 2000년 2월 24일 23시 15분


중국 여행중 괴한에 납치된 귀순자 조명철(趙明哲·41)씨 사건이 사건발생 한달이 돼 가지만 여전히 피랍 경위와 납치범의 정체, 국내 연계조직의 존재 여부 등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특히 조씨로부터 납치사건의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용의자들을 무혐의처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수사▼

1일 조씨를 납치했던 조선족 4명은 조씨가 탈출한 다음날 중국 공안원에게 체포됐다. 또 20일 중국의 한국인 유학생 송모씨(31)를 납치한 일당 가운데 국내에서 송씨 가족으로부터 돈을 받아 중국으로 전달하려 했던 최모씨(30·여)도 붙잡혀 24일 구속됐다.

경찰 수사결과 최씨는 조씨가 몸값으로 준 2억5000만원 가운데 5000만원이 입금된 계좌의 주인과 동일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건의 납치조직이 연계됐을 개연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최씨는 경찰에서 “현재 중국에 있는 환전상 장낙일씨(32)의 부탁으로 송씨 가족이 입금한 돈을 찾아 장씨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뿐”이라며 “조씨의 몸값 가운데 5000만원은 장씨가 빌린 것을 돌려받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결과 조씨의 몸값 2억5000만원은 장씨의 어머니 한모씨(61) 계좌로 입금된 뒤 이 가운데 1억5000만원은 한씨의 사위 이모씨(36)와 구속된 최씨, 중국으로 도망간 조선족 박모씨(32·여) 계좌에 각각 5000만원씩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에서 송금서비스(일명 환치기)를 해오다 지난해 외환관리법위반으로 지명수배된 인물.

경찰은 송씨와 조씨 사건에 모두 중국에 체류중인 장씨와 조선족 최씨가 연관된 점으로 미뤄 이들이 다른 조선족 납치범 일당과 결탁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두 납치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

▼남은 의혹들▼

▽수사은폐〓경찰은 최씨가 송씨 납치범 일당으로 밝혀지기 전 조씨 사건과 관련해 몸값을 송금받은 한씨 등 4명을 이미 8일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납치에 관여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고 돈을 돌려준 이상 납치범들과 짠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나 명백한 납치미수 사건에 대해 돈을 돌려줬다고 수사를 포기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특히 중국 체류중인 장씨가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수배중임에도 경찰은 추가조사를 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 개입 의혹〓조씨 납치사건 수사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조씨의 귀국 다음날인 4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경찰주재관이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조씨는 3일 귀국 즉시 국정원에 납치사건을 신고했다는 것. 이 보고서는 ‘조씨의 신고에 따라 그의 돈에 대해 관계부서와 협의, 계좌추적중’이라고 설명했다.

초동수사 경위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국정원의 개입 의혹을 뒷받침한다. 경찰청 외사관계자는 “베이징주재관으로부터 4일 사건경위를 보고받은 뒤 국정원측에서 ‘우리가 취급하겠다’고 전해와 수사를 종결, 후속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돈의 출처〓조씨는 24일 몸값 2억5000만원의 출처에 대해 “사업에 쓰기 위해 평소 다니던 교회목사에게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저축해 모은 돈”이라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이에 대해 “이 돈은 조씨가 일산의 집을 팔고 받은 2억원과 94년 탈북때 받은 보상금, 강사료 등을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억원 이상의 거액을 아무 때나 인출할 수 있는 계좌에 넣었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현두·선대인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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