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취재]세종로청사, 정부기밀문서 마구 샌다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정부 중앙부처의 중요정책 검토내용을 담은 행정문서들이 부주의한 일선공무원들에 의해 마구 버려져 민간 청소업자들의 손을 거쳐 외부로 대량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총리실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의 행정부처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정부중앙청사 주변에 1주일간 잠복취재한 끝에 행정문서 유출현장을 포착,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4일 오전 3시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청소용역원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수레를 끌고 나타나자 청사 경비원들은 이들을 평소부터 잘 아는 듯 아무 검문절차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들은 10여분 뒤 수레마다 쓰레기가 든 것으로 보이는 부대 10여개씩을 싣고 청사를 빠져나와 300여m 떨어진 한 고물상으로 들어갔다. 취재진이 고물상 마당에 부려진 부대를 풀자 각종 행정문서와 복사본 수정문서, 메모 등이 신문지 등 다른 폐지와 함께 줄줄이 쏟아졌다.

민간 청소업자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한달에 3,4차례씩 관공서의 내부논의내용이 담긴 문서 등을 인근 고물상에 팔아넘기고 있었던 것. 이들이 한번에 팔아넘기는 행정문서는 부대 수십개 분량으로 이날 청사에서 나온 부대 50여개 중 절반 가량이 각종 행정문서와 통계자료 등이었다.

문제는 문서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면 큰 파장을 일으키거나 관련업계가 로비자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 현장에서 취재진이 확인한 문서 중에는 ‘전기사업법 개정안 협의’ ‘행정정보화 추진계획’ ‘행정서비스헌장 제정상황 중간보고’ 등 제목만으로도 사안의 중요도를 짐작케 하는 문서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실제 ‘전기사업법 개정안 협의’문건에는 “전기사업자 상호간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취지 아래 한국전력 독점체제 해체, 전기요금 경쟁체제 도입 등의 내용과 함께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지휘할 전기위원회의 조직체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 가운데 특히 전기위원회의 조직체계는 현재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내용.

또 ‘행정정보화 추진계획’이라는 문서는 정보화총괄담당관실의 지휘 아래 △정보화제도 △정보자원 표준화 △행정정보 공동이용 △전자문서유통 △행정통신망 등 부서별 세부업무 분담계획 및 인원배정안을 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정부부처의 정책검토 초기단계에서 결정의 방향을 미리 알 수 있는 메모와 초안, 지방자치단체의 상부보고 문서 등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문서 분류 및 보존에 관한 규칙과 행정문서관리 지침에 따르면 모든 행정문서는 중요도에 따라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영구보존하도록 돼 있다. 또 문서작성시 발생한 파지나 수정본 복사본 등은 분쇄기 등에 넣어 외부로 유출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해야 할 문서는 소각하거나 지정된 업체를 통해 매각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문서들을 폐지로 넘겨받은 고물상 주인 유모씨는 “1년여전 고물상을 시작할 때부터 정부중앙청사 용역업체인 W기업 직원들로부터 이 문서들을 사들여 왔으나 그런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며 “W기업 외에도 일부 환경미화원들이 ‘용돈벌이’ 삼아 청사직원들의 묵인하에 조금씩 문서더미들을 가지고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 관계자는 “일부 청소용역원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쓰레기를 외부에 팔 때 일부 행정문서들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들 문서 대부분은 직원들이 휴지통에 버린 파지나 수정본 복사본 등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대인·이완배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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