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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3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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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통화내역 조회가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로 인해 사생활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기관원이나 업체 직원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법조회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가 2000만명을 넘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지할 만큼 휴대전화가 대중화한 상태에서 이처럼 불법적 통화조회가 성행해 통화내역이 수사기관에 추적당할 수 있다면 국민의 불안감은 커진다.
이 때문에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사용자에 대한 통화내역을 알아볼 때 미리 기관장의 서면요청서를제출하는등엄격한 절차를거치도록규정하고있다.
그러나 일선 수사기관에서 이같은 절차는 무시되기 일쑤다.
휴대전화업체의 한 관계자는 “경찰서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찰이 수사상 긴급한 사안으로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며 신분증만 제시하고 조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토로한다. 통화내역을 먼저 알아본 후 나중에 공문서를 갖다준다지만 일이 끝난 후에 문서를 제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
경찰에서 요구하는 사례가 가장 많지만 검찰이나 국가정보원 직원이 통화내역을 알아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휴대전화 가입자에 대한 통화내역은 원래 사용자가 요금문제로 항의할 경우에 대비해 업체들이 만들어둔 것. 휴대전화의 경우 한달 단위로 사용자가 건 통화날짜와 시간,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한 시간 등이 컴퓨터에 찍혀 나온다. 보통 6개월치가 보관된다.
휴대전화업체 본사와 고객센터, 전국 주요도시에 있는 지점 어디에서나 자료를 입수할 수 있다.
법적절차를 밟는다 해도 조회내역이 악용될 소지는 남는다. 문서에 수사대상 범죄명 해당가입자와의 연관성 등을 기재해야 하지만 ‘내용이 노출될 경우 수사상 중대한 문제점이 있을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악용,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지 않고 업체에 자료를 요청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심지어 조회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아 해당 가입자의 통화내역을 1년 내내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일정기간 휴대전화 가입자의 전체 통화내역을 자료로 제출하기 때문에 수사목적 외에 내연의 관계 등 다른 약점을 잡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 업체별로 내부적 규제를 만들어 놓았지만 통화내역이 전산화되어 있어 휴대전화업체 지점마다 1명씩 있는 담당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내역을 빼내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할 수도 있다.
수사기관이 수사편의만 높이려 자료요청을 해대는 것도 문제지만 이처럼 법규정을 지키지 않거나 규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경우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