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화]『수뇌부 용퇴』『임기제 지켜야』격론

  • 입력 1999년 2월 3일 19시 29분


'11시간 회의' 현장
'11시간 회의' 현장
일선검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수습책으로 ‘급조’된 검찰수뇌부와 평검사간의 대화는 일단 ‘성공적’으로 끝났다. ‘검찰총장의 용퇴’를 주장하며 집단행동 일보직전까지 갔던 평검사들은 수뇌부와 2일 오후3시부터 3일 오전2시까지 11시간 동안의 마라톤 회의를 마친 뒤 검찰총장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참석 검사들은 대부분 “수뇌부 퇴진요구는 철회했지만 토론과정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문제와 불공정한 인사, 대전사건의 문제점 등에 대해 할 말을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토론이 시작될 때는 다소 의례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오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민감한’ 문제도 거론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됐다.

★검찰수뇌부 퇴진★

초반부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이 평검사들의 직속상관인 지검차장들을 모두 토론장에서 나가라고 한 뒤부터 진솔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자신들의 건의문을 읽어내려 가며 “검찰의 중립성 논란과 관련해 실추된 검찰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검찰의 수장이 임명권자가 아닌 국민앞에 책임있는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단상으로 나가 이차장에게 건의문을 전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지방에서 온 한 검사는 “수임비리 사건으로 조직이 너무 흔들렸다. 검찰수뇌부가 여론에 밀려 조직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 아니냐”며 수뇌부 사퇴를 주장했다.

2일 오후8시반까지 평검사들의 주장이 마무리되자 이원성차장은 “이제 내가 해명해도 되겠느냐”고 말문을 연 뒤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이차장의 설득은 한시간 가량 계속됐다.

이차장은 “검찰총장과 나는 동반사퇴도 생각했지만 사퇴를 하고 나면 여론이 새 지휘부에 재수사를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검찰이 두번 죽는 꼴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차장의 발언이 끝나자 집단행동을 하지 않은 지청의 한 검사가 일어나 “건의문을 만들었다는 검찰청에 묻고 싶은 게 있다”며 ‘검찰총장 용퇴론’을 정면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총장사퇴가 지금의 검찰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이점이 있는가. 총장이 사표를 낸다고 검사가 떡값을 받은 일이 없어지느냐. 국민이 떡값받은 검사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지 총장의 사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검사는 “검찰총장 임기제는 우리가 검찰의 중립성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라며 “이제까지 임기제가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얼마나 슬퍼했느냐. 그런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며 사퇴론을 반대했다.

★정치적 중립★

국회 5·29사태와 정치인 사정수사에 대한 검찰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 검사는 “국회 5·29사태에서 여당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태도가 엿보였다. 법원에서 영장기각이 불을 보듯 뻔한데 굳이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검사는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검찰총장의 인사를 투명하게 해야 하며 검찰총장의 인사를 집권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인사청문회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차장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점이 일부 있다는 것은 시인한다. “심사숙고해야 할 대목에서 너무 민감하게 과민반응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앞으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중립을 지키겠다”며 일선검사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부터 평검사들의 분위기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전법조비리사건★

이 부분에 대해 검사들의 불만이 가장 많이 쏟아졌다. 한 검사는 “초임검사 시절 선배로부터 사건관계로 돈을 받아서는 안되지만 명절 때 떡값명목으로 돈을 받거나 전별금을 받아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회식하는 것은 좋다고 배웠다”며 “그런데 하루아침에 수년전의 일을 문제삼아 ‘비리혐의자’로 만들어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 검사는 “심재륜고검장님도 억울할 것이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분에게 그렇게 무리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라며 “심고검장이 반발하고 있는데 보강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이차장은 “이종기변호사와 술을 마셨다는 증거는 상당수 있다. 아무리 싼 술집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변호사는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승구대검중수1과장이 일어나 보강증거가 추가로 있음을 해명했다.

★인사불평등★

신정부 출범 이후 두번에 걸친 인사에서 호남편중인사가 이뤄졌다는 점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한 검사는 “특정지역 중심의 인사편중이 너무 심하다. 왜 호남사람들이 갑자기 부상하나. 과거에 소외됐다는 이유만으로 실력과 연공에 관계없이 중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호남 출신 검사들의 중용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검사들이 문제제기를 했다.이차장은 이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 나도 고검장 승진후 고향인 대전에서 근무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며 “차후의 인사이동에 있어서는 능력과 연공을 기준으로 인사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조원표기자〉cw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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