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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28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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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이 말하는 ‘내부 모순’은 구체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 검사들은 심고검장의 항명이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불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정치검찰’에 관한 문제라고 분석한다.
검찰이 정치검찰로 단죄된 최초의 사례는 자유당 정권 시절인 60년 3·15 부정선거 반대 시위대 발포사건. 당시 시위대에 발포하도록 명령한 지휘책임으로 마산지청장 서모씨가 구속됐다. 또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자리에 있는 법무부장관 홍모씨도 3·15 부정선거에 직접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3공화국 때에는 법무부 검사들이 정권의 구미에 맞는 유신헌법 제정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정치검찰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유신헌법 기초에 관여한 검사들 중 일부는 그 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에 올랐다.
5공화국 당시에는 시국 공안사건이 거의 100% 정치권력의 입맛대로 처리됨으로써 정치검찰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91년 수서사건 수사는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 때문에 검찰권 행사를 왜곡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검찰은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회장으로부터 1백여억원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도 묻어뒀다.
문민정부 들어서도 정치검찰 시비가 이어졌다. 검찰은 12·12사건 관련자들을 기소유예하고 5·18 수사에서는 ‘성공한 쿠데타’라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12·12 및 5·18사건 재수사에 나서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검찰은 또 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부속실 장학로(張學魯)비서관의 비리가 터지자 재빠르게 ‘야당 공천헌금 수사’에 나섬으로써 정치검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정치검찰 논란은 새정부 들어서 오히려 증폭된 측면도 있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야당총재를 직접 겨냥해 “여론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또 정치인 사정(司正)과 세풍(稅風) 총풍(銃風) 국회529호실 사건 수사에서도 정치적 중립 시비가 계속됐다.
심고검장은 정치검찰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그는 “일부 검찰수뇌부와 정치검사가 수많은 시국 공안사건과 정치인 사건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탄압했으며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해왔다”고 지적했다.
심고검장은 새정부들어 제기된 정치검찰 시비의 책임이 김총장과 검찰수뇌부에 있다고 비난했다. “YS정권에서 임명돼 기반이 약한 김총장이 새 정권에 잘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차기 검찰총장 임명을 둘러싸고 일부 검찰간부들이 권력에 줄을 대는 등 과거 정치검사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고검장의 지적에 대해 검찰수뇌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축한다. 대검은 28일 “정치검찰 문제는 심고검장이 자신의 개인비리를 호도하기 위해 억지로 꾸며댄 허위 논리”라고 비난했다.일선 검사들은 “심고검장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검찰의 정치시녀화 문제는 대부분의 검사들이 공감하는 검찰의 고질적 환부(患部)”라고 말하고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