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관 사칭 2조5천억대 채권 사기극

  • 입력 1998년 11월 9일 19시 10분


청와대 비서관이나 고위 공직자를 사칭해 사실상 ‘휴지조각’인 총 액면가 2조5천억원대의 가짜 채권을 정부와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꿔줄 수 있는 것처럼 속여 중소기업인 등으로부터 38억5천여만원을 사취한 채권사기단 62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강력부(부장검사 박영수·朴英洙)는 9일 전문 채권사기 12개 조직 총 62명을 적발하고 청와대 1급 비서관을 사칭한 박무남(朴茂男·56)씨와 K은행 태평로지점장 최병욱(崔炳旭·52)씨 등 3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정부의 ‘외국자본 유치 담당관’을 사칭해온 오정근씨(60·일명 오박사) 등 23명을 같은 혐의로 지명수배하고 6명은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시효가 지난 건국채권이나 석유증권을 정부에서 다시 회수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위조된 미국의 시티은행 수표, 대만의 구국(救國)공채, 일본의 소절수(小切手)수표 등을 진짜인 것처럼 속여 사기행각을 벌였다.

쌍둥이 형제인 박무남과 일남(一男·56)씨는 각각 청와대 ‘실명해지외부집행국장’과 안기부직원으로 사칭하며 자신들의 채권회수에 협조할 경우 “개인은 일체의 민형사사건을 사면해주고 기업은 5년간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허위 ‘사면장’까지 작성해 기업인 등을 유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형제는 5월 송모씨(60·기업인)에게 “정부에서 IMF극복을 위해 기존 채권 1백20조원어치를 모집했다. 계약금을 주면 싼 값에 채권을 제공할 수 있다”며 2백억원을 사취하려 한 혐의다.

‘청와대 특별수석비서관’을 사칭한 이정세(李正世·48)씨 등 10명은 98년7∼9월 건설업자 최모씨(42)에게 “정부를 대행해 채권회수를 담당한다. 필요경비를 대주면 건설공사 입찰권을 주겠다”고 속여 경비조로 3억원을 사취한 혐의다.

D기업 회장은 “정부 특별자금 중 2천억원을 대출해 주겠다”는 이씨의 말에 속아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이씨를 계열사 사장으로 임명했다가 해외사업 투자 시기를 놓쳐 1천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영(李大榮·68)씨 등 3명은 지난해 7월부터 기업인 실직자 등에게 접근해 “비실명 채권 3조원어치를 갖고 있는데 5천억원 정도를 싸게 넘길테니 이익금을 나누자”며 중소기업인 최모씨(55·여)를 속여 투자금조로 19억원을 가로챈 혐의다.

채권브로커 김유복(金留福·47)씨 등 8명은 옛 대한석유주식회사가 발행한 ‘석유증권’이 87년 이후 실효가 없어졌는데도 5월경 “정부가 석유 증권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 있다”고 속여 기업인 등으로 부터 4억5천만원을 사취한 혐의다.

이같은 사기과정에서 지점장 등 시중 은행 간부 7명은 “거액을 예금하겠다”는 사기범들의 유혹에 넘어가 ‘휴지조각’에 불과한 건국채권 석유증권 등에 대해 ‘은행에서 현금교환이 가능하다’는 확인서까지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 채권사기 확인 및 신고전화 02―536―3333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