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분단시대 역사해석

  • 입력 1998년 6월 30일 20시 02분


평양 서남쪽 신미리에 있는 북한의 애국열사릉에는 낯설지 않은 인물들의 잘 정돈된 묘소들이 수십기 들어차 있다. 남한에서 처형당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曺奉岩)의 가묘가 있는가 하면 6·25 당시 납북된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 조소앙(趙素昻) 등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조봉암이야 남한에서 처형당한 인물이니까 북한에서 ‘모시는 게’ 당연하달 수도 있지만 납북된 두 독립운동가의 묘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것은 의외다. 남과 북은 모든 것을 상반되게 해석한다는 분단시대 역사교육의 결과라고나 할까.

▼최근 역사문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남과 북은 현대사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인물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흥미를 자아낸다. 가령 삼국통일의 중심적 인물 김유신(金庾信)에 대해 북한 학자들은 ‘외세를 끌어들인 반민족적 봉건통치배’로 평가한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에 대해서도 북한은 ‘계급차별을 합리화한 봉건질서의 옹호자’로 비난한다고 한다.

▼개화사상가로 알려진 김옥균(金玉均)에 대해서도 북한 학계는 친일파 부르주아 혁명가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정약용(丁若鏞) 전봉준(全琫準) 홍범도(洪範圖)에 대해서는 개혁사상가 민중지도자 초기 항일투쟁의 명장으로 각각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신채호(申采浩)도 지사적 민족주의자로 남이나 북에서 같이 존경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학계는 이른바 주체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에 같은 인물을 놓고도 남한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나마 남북이 함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물이 몇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들이야말로 통일 이후 새롭게 우리 역사를 쓰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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