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억대 대원각기증 김영한할머니 『재산 다주고 가련다』

  • 입력 1997년 11월 28일 07시 45분


가난을 못 이겨 기방(妓房)에서 청춘을 시작했던 순정의 할머니는 경제난으로 꽁꽁 언 나라를 끝내 울리려는가. 지난해 1천억원대의 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화제를 모았던 김영한(金英韓·82)할머니가 나머지 전재산을 자신이 숨진 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공증으로 남긴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김씨는 지난 여름 신병으로 수술을 앞두고 『여생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남은 가산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과학도들을 위해 써달라』며 공증절차를 마쳤다. 김씨의 남은 재산은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 대지 3백평의 지하2층 지상5층 1백억원대 남촌빌딩과 현재 살고 있는 8억원대의 용산구 이촌동 80평 빌라. 그녀는 이달 중순에도 『장한 문학인들의 힘을 북돋워야 한다』며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을 기증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토록 했다. 백석은 가산을 차압당한 후 권번기(券番妓)가 된 김씨가 스무살되던 해부터 사랑을 나눴던 월북 시인. 평생 홀몸으로 살아온 김씨는 지난해 그와의 일들을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 펴냄)이란 자서전에 고스란히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에 기증키로 한 김씨의 빌라에 붙은 택호(宅號) 「자야오당(子夜晤堂)」도 백석이 김씨에게 지어준 「자야(子夜)」에서 따온 것이다. 김씨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기로 한데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는데 너무도 난감하다』며 사실 확인을 거절하다가 『아무쪼록 내가 죽은 뒤에 작은 뜻이 이뤄지기만을 바란다』며 기증사실을 시인했다.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은 김씨는 다음달 14일 「대원각」이 「청정도량 길상사(吉祥寺)」로 탈바꿈하는 개원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찰은 법정스님이 불교에 귀의하려는 김씨에게 지어준 법명 길상화(吉祥華)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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