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개숙인 가장들의 어깨위에 무겁게 드리운다. 더 이상 신화는 가능할 것같지 않다. 이에 대한 반작용일까, TV와 서점에서는 강하고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성공담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들의 성공시대」다.
25일 종영하는 MBC 월화드라마 「예감」은 화장품회사 말단 여직원이 브랜드 매니저의 지위에 오르는 화려한 성공으로 끝을 장식한다.
「예감」은 주인공 유림(이혜영 분)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우연의 남발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던 드라마다. 일본 드라마 표절시비로 한동안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주인공의 분투와 재벌 아들과의 연애가 1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들을 「감동」시켜 몇차례 시청률 1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시작부터 30%대의 탄탄한 시청률을 얻고 있는 KBS 아침드라마 「모정의 강」 역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결국은 성공을 일궈내는 「또순이」 혜숙(박지영)이 주인공이다.
서점가에서도 「잠자는 사랑과 성공을 깨워라」 「프로를 꿈꾸는 그대에게」 「30대 신화는 늦지 않다」 등 성공한 여성들의 자전적 에세이가 봇물을 이룬다.평범한 주부에서 성공학 강사로 변신한 정덕희의 「부드러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한다」는 수필부문 베스트셀러 3위에까지 올랐다.
이같은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선망의 열기를 두고 「매몰찬 현실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대리만족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자의 도움으로 신분상승하는 「신데렐라」든, 제 힘으로 성공하고 남자도 일으켜 세우는 「또순이」든 평범한 여성들에게는 「TV속의 떡」에 불과한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동화속 신데렐라를 그린 영화조차도 재해석이 시도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디즈니사가 제작해 지난달말 미국 ABC TV에서 방송한 신판 「신데렐라」의 주인공은 흑인 팝가수인 브랜디. 요정도 흑인인 휘트니 휴스턴이고 왕비는 우피 골드버그다.
왕자를 대하는 신데렐라의 태도도 달라졌다. 『공주처럼 위해주겠다』는 왕자의 말에 검은 피부의 신데렐라는 『아뇨,친절과 존경을 담아 한 인간으로 대해주세요』라고 대답한다.
신데렐라 역에 흑인 여성을 내세운 이 진보적인 수정판에서도 여전히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 주는 것은 백인 왕자의 몫이다. 그러나 혹시 아는가. 다음 번에는 신데렐라가 위기에 처한 왕자를 구하는 새로운 수정본이 나올지.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