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억울한 옥살이 6개월

  • 입력 1997년 11월 2일 19시 49분


고문을 통해 생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수사가 아직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충격적이다. 대구지법에서 방화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계류중이던 피의자가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억울한 옥살이 6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공소취소로 완전히 누명을 벗었다. 피의자는 법정에서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았고 폭행을 해 강압적인 상황에서 자술서를 썼다』며 완강히 범행을 부인했다. 독재정권이 물러간 이후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이 개선됐다고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은 깊은 충격과 우려를 던져주었다. 무고한 시민이 저지르지도 않은 방화살인 강도사건을 자백하고 자술서에 지장을 찍은 것을 보면 고문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행됐는지를 넉넉히 짐작할 만하다. 일선 경찰서의 수사과정에서 자행된 이런 고문은 허술히 넘겨서 안되는 중대 범죄다. 고문 및 범인 조작에 관여한 경찰관들의 범죄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내 전원 형사처벌해야 하고 지휘 감독자들에게도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조작한 경찰도 경찰이지만 뚜렷한 물증없이 피의자를 경찰 의견대로 기소한 검찰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은 피의자가 살해된 다방 여주인과 내연관계이고 범행 전 다방에서 보았다는 목격자 진술 등 정황증거와 경찰에서의 자백만으로 구속기소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피의자는 법정에서 『검찰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억울한 피의자의 호소를 듣지 않고 경찰수사를 형식적으로 추인하려면 검찰이라는 수사기관은 옥상옥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검찰에 고문을 통한 자백이라는 인권경시 수사행태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수사 관계자들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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