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리양은 부모의 애끓는 기도도, 온 국민의 성원도 끝내 멀리한 채 유괴 14일째인 12일 싸늘한 시체로 변해 돌아오고 말았다.
나리양이 살아 돌아 오기만을 기원했던 모든 엄마들은 유괴범이 임신 8개월의 주부였다는 데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리양 생환에 수사의 무게를 더 두고 긴박하게 유괴범을 추적해온 경찰 수사진도 나리양이 숨졌다는 범인의 진술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지는 허탈감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11일 오후. 범인들로부터 전화가 끊긴지 벌써 11일째. 박나리양 부모들과 상의, 공개수사를 한지도 이미 8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나마 걸려오던 제보전화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유괴사건의 특성상 시간을 오래 끌수록 나리양의 생존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고 자칫 미제사건이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수사팀을 점차 압박해 왔다.
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리양 유괴사건에 우리 딸이 관련된 것 같다』는 말에 전화를 받던 담당 형사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일단 1시간 후 행주산성에서 만나 자세한 얘기를 하기로 한 뒤 나리양 집에 걸려온 협박전화 녹음 테이프를 챙겨 급히 약속장소로 나갔다.
약속장소에는 전현주씨의 부모와 외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에게 따로따로 테이프를 들려주니 세 사람 모두 전씨의 음성이 맞다고 말했다. 합동수사본부는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오후 8시 전씨의 가까운 후배 박모씨를 만나 전씨가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여관에 은신중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즉시 불광동 일대 여관을 모두 뒤졌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까지 전씨의 흔적은 아무곳에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전씨의 출신 학교후배들을 상대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반경. 전씨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모여관에 은신중이라는 새로운 첩보가 들어왔다.
수사진이 황급히 신림동으로 뛰쳐나갔다. 전씨는 체념한 듯 순순히 체포됐다.전씨는 그러나 자신은 주범이 아니며 범행 다음날인 8월31일 오전 2시경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남편의 사무실에서 일행과 헤어졌다고 말했다.
나리양이 아직 사무실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겨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사당동 사무실에 도착직후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2층 주택의 지하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가는 순간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밑에 놓여 있는 자주색 등산가방 안에 나리양은 입과 손발이 묶인 채 이미 목이 졸려 숨져 있었다. 숨을 거둘 때의 고통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나리양이 입고 있던 옷은 갈갈이 찢겨 있었다.
〈이현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