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참사]불지옥속에서 꽃핀 부부애

  • 입력 1997년 8월 8일 19시 46분


지난 6일 괌 아가냐 공항 인근에 추락한 대한항공기에 탑승했던 두 쌍의 부부가 2백25명의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사고현장의 불길속에서 꽃피운 살신성인의 부부애가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살배기 아들을 둔 金振和(김진화·32·회사원·서울 강남구 청담동)씨가 부인 權珍慧(권진혜·24)씨를 구하고 불길속에 산화한 것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극적으로 보여준 한편의 인간 드라마. 사고가 났던 6일 오전 1시경. 기체가 화염으로 휩싸이기 직전이었다. 『진혜야…. 진혜야…』 김씨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애타게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기내는 온통 신음과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이었다. 김씨는 잠시 후 앞쪽으로 튕겨져 나가 쓰러져 있는 권씨를 발견했다. 추락할 때 생긴 틈새도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사력을 다해 권씨를 틈새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손은 화상으로 타 살갗이 벗겨지고 어깨는 기체가 부서지면서 생긴 파편에 찢겨 피가 흘렀다. 이때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기내로 불길이 밀려 들었다. 김씨는 끝내 탈출을 하지 못하고 화염속으로 사라졌다. 『내 이름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딘가 분명히 살아있을 것 같은데…』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권씨는 8세 차이가 나는 남편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면서 자신에게 남겨준 사랑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며 할 말을 잃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金珉錫(김민석·30·회사원·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씨는 불길에 휩싸인 부인 朱世珍(주세진·27·회사원)씨를 구하다 손과 팔에 중화상을 입었다.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김씨는 지난해 9월 결혼했으나 회사 사정으로 이번에 「지각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추락 직후 김씨 부부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폭발음에 눈을 떴다. 휘발유 타는 매캐한 냄새와 검은 연기로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김씨는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안전벨트를 풀었으나 부인 주씨는 추락 때 입은 오른팔 골절상으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김씨가 허둥대는 주씨에게 손을 뻗치려는 순간 화염이 주씨의 몸을 덮쳤다. 김씨는 얼굴과 옷에 불길이 번져가고 있는 주씨를 자신의 몸으로 감싼 뒤 두손으로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불길이 자신의 팔에 옮겨 붙었다. 주씨는 몸 전체에 70% 정도 화상을 입고 김씨도 손과 팔에 중화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주씨는 불길속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바람에 흡입화상으로 목과 기도가 모두 타버렸다. 김씨는 현지에 부인을 남겨두고 치료를 위해 8일 고국으로 후송돼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주씨는 미국 텍사스 화상전문병원으로 후송될 예정이다. 〈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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