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0대여인의 기구한 사연]『제발 감옥 보내주세요』

  • 입력 1997년 1월 24일 20시 14분


『갈 곳도 없고 벌어먹을 힘도 없어요. 제발 감옥에 보내주세요』 오갈 데 없이 방황하다 2만1천원어치 과일을 훔치고 삶의 마지막 방편으로 감옥행을 원했던 한 여인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10단독 朴東英(박동영)판사는 23일 과일행상 트럭에서 사과 15개 등 과일을 훔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피고인(48·여)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박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이 반드시 실형의 대상은 아니지만 본인이 실형을 원하고 있고 의지할 곳도 생활능력도 없는 피고인이 석방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해 이같이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기구한 인생은 10여년전 술과 도박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가출하면서 비롯됐다. 김씨는 이후 서울과 강원도 일대의 교회와 기도원을 전전하며 간단한 일을 해주고 끼니를 해결하는 어려운 생활을 꾸려왔다. 그러나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정신력마저 희미해져 아무 생각도 없이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생겨났다. 김씨는 94년 이후 등산화 한켤레와 옷 한벌을 훔치다 두차례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송모씨의 트럭에 실려있던 사과 감 귤 등을 훔쳤다가 구속수감됐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자포자기상태에 빠진 김씨는 지난 16일 구형공판에서 박판사에게 『감옥이 더 편하다』고 호소했다. 수차례 김씨의 분명한 의사를 확인한 박판사는 김씨의 범행이 실형 대상이 아닌 점 때문에 고민하다 결국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범죄전과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실형을 선고해 준 것. 박판사는 『김씨가 갱생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어 사회보호시설에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실형을 산 뒤 감옥생활에 맛이 들어 다시 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金泓中·申錫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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