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남의 눈물 무서워하는 사회

  • 입력 1996년 12월 7일 20시 11분


얼마 전 전남경찰청이 음주 운전자들의 명단을 공개하여 항간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또 유명인들 몇몇이 음주운전을 하다 잇달아 적발되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들은 말 그대로 유명한 사람들이라 세상에 드러내놓고 인격을 의심받음은 물론 직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전남경찰청의 명단에 오른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그들을 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적인 평판이 중요하기는 동물들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돌고래 사회의 수컷들은 늘 서넛이 한패가 되어 몰려다닌다고 한다. 막다른 골목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암컷을 한곳에 붙들어 놓고 사랑을 고백할 재간이 없기 때문에 서넛이 힘을 모아 암컷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닌다. 종일토록 따라붙는 수컷들의 추근거림에 못이긴 암컷들이 정사를 허락할 때마다 수컷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영광을 얻는다. 그런데 이들 사회에도 빈번하게 패를 옮겨 다니며 남에게 끼치는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얌체 수컷들이 있다. 그러나 일단 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자로 낙인이 찍히면 정사를 가질 수 있는 차례가 와도 그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모두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 않아도 어느 집안의 누구인지 서로 잘 알던 시대에 살았었다. 그런 사회에서 만일 음주운전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평생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 이상 개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적 평판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어 우린 법이란 걸 만들어 서로를 구속하게 되었다. 우리들간의 약속을 어긴 이들이 단지 법으로만 다스려지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남의 눈을 무서워하는 사회가 아쉽다. 최 재 천<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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